최위숙 계룡수필문학회원

우체국에서 편지를 보내고 나서 문득,  “요즘도 관제엽서가 나옵니까?”  “그럼요, 이백 이십 원입니다.”

몇 십 원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기만 하다. 관제(官製)라는 말이 좋게 들릴 일 별로 없지만 엽서는 느낌이 달랐다.

나도 어딘가에 뽑힐 것 같은 희망 때문인지 반가운 노래에 가슴 뛰는 사연이라도 기대했기 때문일까.

어쩐지 친근감이 느껴지는 그 관제엽서가 예전과는 달리 세련된 모양이다. 그냥 보면 일반엽서인지 관제엽서인지 분간이 잘 되질 않는다.

예전의 딱딱한 한 가지 도안에서 벗어나 받는 이의 기호와 유행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모양새가 눈에 뛴다. 예를 들면, 밝은 회색의 깔끔하고 단출한 모양도 있고, 강렬한 구호가 눈길을 끄는 투박한 엽서도 있다. 아련한 들꽃의 향기가 있는가 하면 형극의 감촉이 느껴지기도 한다.

집을 떠나 타지에서 학교를 다닐 때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관제엽서에 간단명료한 글을 써 보내 주셨다.

이를테면 먼 눈 팔지 말고 차 조심할 것, 연탄가스 조심할 것, 잠자기 전 방문 단속 잘 할 것 등등. 언제나 글 말미에는 논어나 장자에 나오는 한 구절 적어 보내주시곤 했다.

또한 그 시절, 라디오 음악방송을 들으면서 사용했던 건 주로 엽서였다. 관제엽서와 우표 붙인 편지봉투를 손에 들고 동네 우체통을 향하며 설레던 기억이 있다.

자전거를 탄 우체부 아저씨의 가방에 담겨져 멀리 방송국까지 날아갔고 몇 주일까지 기다렸다가 듣게 되는 음악과 사연들. 그리고 애청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엽서라는 작은 공간은 크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관제엽서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관제엽서를 받거나 보내는 일도 같이 졸업했나 보다.

어디 관제엽서뿐이랴. 컴퓨터와 인터넷에 익숙해지면서 손으로 글씨 쓸 일도 줄어들고, 편지라는 것도 일 년에 한번 쓸 일이 있을까 말까하다.

이메일이라는 것을 사용하면서부터 만년필로 편지 쓰는 일도 잊어버렸다. 즐거움이 하나 사라진 셈이다.

이제는 펜으로 뭘 쓸려고 해도 조금만 쓰다 보면 팔이 아프고 손가락이 굳어온다. 글씨는 단정치 못하고 태극기 바람에 휘날리듯 휘날린다. 자연도태인 셈이다.

얼마 전 뜻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지금은 너나없이 전자 우편을 사용하는데 또박또박 자신의 필체로 한자 한자 꼭꼭 눌러 쓴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또 글씨는 얼마나 단정하고 예쁜지 예기치 않는 기쁨이었다. 내가 받은 기쁨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라도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기도 한다. 촉수 낮은 등을 켜고 해거름의 쓸쓸함을 체로 걸러내는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쓴다.

창밖을 내다보며 하루 일을 끝낸 사람들이 잰걸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모든 것들을 담아  편지를 쓰지만 나이가 들어서 일까.

자꾸 안으로 마음이 접어져 어디라도 부칠 수 없게 되고 만다. 그 편지는 대부분 부치지 못한 체 책갈피에 끼여 몇 년씩 감금되어 있는 게 태반이다.

다 쓰고 나면 왠지 부치기가 망설여지기도 하고 이상하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부칠 날짜를 놓치고 그러다가 보면 부치지 못하는 편지가 되고 마는 게 그 이유인지 모른다.

가슴 안에만 편지가 쌓이니 마음의 우체통은 누가 용량을 늘려 주려나 싶기도 하다. 이메일과 로또의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나의 행운인지 오늘도 보내지 못한 사연은 내 마음의 우편함에 가득하다.

학창시절에 엽서를 수십 장씩 샀던 기억들이 아련하다. 그 많은 엽서를 누구에게 보냈는지는 가물거린다.

막상 엽서 몇 장을 사고 보니 누구에게 보낼 것인지 막막해졌다. 이메일이 아닌 손으로 쓴 편지를 누구에게 보낼 수 있을까.

그것도 내용을 훤히 알 수 있는 편지를. 아무도 없다. 내 스스로에게 보내야 할 판이다.  오랜만에 만년필을 찾아 잉크를 채워볼까 한다. 비록 받아주는 이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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