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석 칼럼위원

▲ 이아석 남해안시대포럼 의장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부류의 하나가 소위 철밥통으로 불리는 국가투자기관이나 관변기업의 임원과 종사자들이다.

여기에는 단지 명칭이 민영화되거나 공익성을 가장한 조직들이 망라되어 있고, 그 분야는 금융에서부터 자원관리와 운영, 복지단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가 있다.

올 국감에서만 지적된 이들의 운용행태나 임금 수준과 예산 남용을 들어보면 과연 우리 사회가 이런 사람들을 위해 얼빠진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자괴감을 금할 수가 없다.

어렵게 직장을 구해 성실하게 가계를 꾸려가는 서민과 중산층의 월수입이래야 고작 몇 백 만원이고, 지금 서민 대중의 저변 층에는 겨우 몇 십 만원으로 연명해가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국가기반이 될 만한 공기업이나 민영화 된 기업, 농어민의 땀과 노력으로 조직된 금융 상층부의 임원들이 년 수억 수 십억의 연봉으로 호의호식하면서 그것도 모자라 걸핏하면 호화시설을 만들거나 부정한 축재나 예산탕진에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쏟아진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됐을까. 정부로부터 검찰과 경찰 등 수사, 감사기관들은 도대체 뭘 바라보고 있다는 말인가.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난한 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는 말은 사람이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더하여 가는 동안에 점차 검소함과 분수를 잃고 만다는 점을 함께 경계하는 뜻인데 지금 '철밥통' 층들이 사회양극화의 중심에 있는데도 모두 손을 놓고 바라보고만 있는 이런 상황을 어찌 해석해야 옳을 것일까.

공공성이나 공익성을 띈 기관과 기업에서 종사하는 처지라면 누구보다 더 검소하고 헌신하는 사명감을 갖지는 못할망정 눈 먼 돈 긁어모으듯 임자 없는 창고라는 식으로 털어내는 저들을 보면 한 마디로 사회공익과 애국의 열정을 싹 가시게 한다.

어쩌다가 일 년에 한 번쯤 꼴갑 한답시고 그런 부류들을 무더기로 불러 놓고 호통이나 치다가 어두워지면 향응이나 받는 국회의 추악한 몰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법과 도리를 늘 강조하는 정부가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온갖 철밥통들을 해체하지 않는 한 국민통합이고 화합이고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일이란 점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농어민들을 상대로 권익과 삶의 신장을 담보한 금융 조직들은 그 조직 자체를 담보로 기득권을 농단하고 자신들의 권익에 배를 불리고 있다.

어려운 처지에서 금융대출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머리를 내젖지만 정작 거기에 종사한 사람들은 불과 몇 년 만에 부동산을 소유하거나 잇속을 차려도 누구 하나 형평성을 시비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떡 만드는데 어찌 떡 고물을 묻히지 않으랴 하는 논리가 먹히는 세상이다.

늘 그들이 만들어 내미는 떡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대출자들의 가슴을 체하게 만들고, 떡고물이 넘쳐나는 그들만의 정보와 기득권이 판치는 꼴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런 부조리도 모자라 임원들이랍시고 받아가는 댓가들이 엄청나다.

지난 대선정국을 기화로 대두된 경제민주화의 의미는 그 대상이 국가동력을 이끄는 기업군이 아니라 바로 이런 철밥통을 부수는 형평성의 시도가 되어야 했음에도 정부는 지금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만 있다.

정부의 공정하고 형평성 있는 관리를 요구하면 입법을 빙자하지만 정작 입법을 통해 제지해야 할 국회의원들은 제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하다.

정치쇄신이라는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세비를 올리거나 온갖 구실로 국고 축내기에 양심을 팽개치고 있다.

다행히 정부 관료가 파티를 끝내라는 경고로 방만하고 무절제한 그들만의 축제를 나무라고 있지만 이것이 국감시즌의 일시적인 지적으로 그치거나 오늘의 현직들이 내일의 잔치상으로 미루어 남겨두거나  방치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선거와 함께 대두되었다가 슬거머니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대상은 땀 흘려 일하는 기업군이 아니라 바로 국민적 정서를 망각하고 분수를 잃은 이런 철밥통들을 퇴치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점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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