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내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우리 집에 간간이 민박 손님이 찾아든다. 가족과 함께 올 때도 있고, 연인끼리 오기도  한다.

가족들이 숙박할 때와 연인들이 숙박할 때의 부엌 풍경이 다르다. 가족들이 왔을 때는 대부분 여자들이 부엌엘 들락거린다.  그런데 연인들끼리 왔을 때는 남자가 식사를 준비 하려고 부엌엘 드나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예전 같으면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졌을 일이다. 나도 어른들의 불호령을 듣고 보고 자란 세대다. 이젠 시대의 변화에 조금 익숙해졌는지 그런 모습이 밉지도 않고 어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몇 해 전 일이다. 외출했다가 들어오니 대학생인 아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제 이모들은 커피를 마시며 수다만 떨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황당하기도 하여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웬일이고? 설거지를 다하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여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한다. “우리가 시킨 거 아이다. 지가 한번 해 볼라카데.”

나는 내심 ‘그래 지금부터 연습해 둬라. 앞으로는 가정일도 서로 나눠가며 해야 할 거다.  너는 아버지 세대와는 다를 테니까.’라며 현실 파악을 해도 속마음은 그게 아니다.

예전에는 여자가 바깥출입이 잦으면 큰일이라도 날듯이 직장 갖는 것까지 만류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결혼과 동시에 직장생활을 접어야 했다. 요즈음 젊은 남자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직장 가진 여자를 선호한다.

혼자 벌어서는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지 싶다. 그러다보니 바깥일 집안일을 분리해서 하지 않는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부엌일을 하게 된다. 거기다 남자가 집안 살림을 하고 여자가 직장을 갖는 경우도 있다. 서로 적성에 맞는 일을 분담해서 하게 되니 참으로 합리적인 삶이 아닌가 싶다.

회사에 다니며 집안 살림을 꾸리던 지난 세월이 떠오른다. 당시엔 젊은 패기로 어렵고 힘겨운 일도 잘 처리했다. 아이들 셋 뒷바라지 하랴, 시가의 길흉사 챙기랴, 농번기에 일손 도우랴,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그래도 젊었기에 힘든 줄도 몰랐다. 내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곤 했다. 남편은 늦은 귀가로 집안일을 돌볼 시간적 여유도 없지만 별관심도 없었다. 그러니 모두가 내 몫일 수밖에 없었다. 지치고 힘들 때에는 남편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 몸도 많이 지쳤다. 몸을 맘대로 굴리고 아끼지 않은 대가를 요즈음 와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예전에는 마음이 하자면 무조건 몸은 따라주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몸이 쉬자면 마음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 생활 자체가 편해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그보다 몸이 고물이 다 되어 버린 게 더 큰 이유다.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이나 약방을 찾지 않는 나를 보시며,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떠오른다.  “호미로 쉽게 할 일을 쟁기를 들여대도 힘이 들 수도 있니라.”

이층 부엌이 요란하다. 살며시 올려다본다. 남자가 설거지를 하고 있다.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남자의 구부정한 뒷모습만 보인다. 이왕이면 둘이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는 모습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설거지를 한다면 더 없이 좋으리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돕는 설거지는 남자들 스스로가 행복하고 즐겁다고 여길 수도 있다.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푸근하고 넓어 보인다. 남자의 뒷모습에서 훗날 내 아들의 모습을 본다.

거실에 앉아 꼼짝도 않고 텔레비전에 빠져 있는 남편에게 평소에 안하던 애교를 슬며시 부려본다.

“당신, 오늘 설거지 한 번 안 해 보실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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