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애인- 신달자 著]

▲ 윤정선/주부
"나에겐 백치애인이 있다/그 바보 됨됨이가 나를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중략…그대 백치이다/우리는 바보가 되자/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바보가 되어서 모르는 척 하며 살자/기억속의 사람이 되지 말자/잊혀진 사람이 되지 말며/이렇게 모르는 척 하며 살아가자/우리가 언제 악수를 나누었으며 우리가 언제 마주앉아 차를 마셨던가/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아무 상관없는 행인처럼 그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는 거다/…중략…너는 나의 애인이다/백치애인이다."

더위가 힘을 잃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을 보니 이제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이다. 책장을 정리하다 무심코 발견한 책, 신달자 시인의 '백치애인'이라는 수필집이었다.

옛 기억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면서 이젠 누군지 기억조차 희미한 그에게 향했던 짝사랑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너무 쉽게 사랑하고 헤어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제는 기성세대에 편입된 80~90년대를 지나 온 우리들도 그런 세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변명하자면 그래도 '사랑'이라는 말에 더 가슴 설레어 하고 그 사람을 향해 한번쯤 열병을 앓는 낭만 아닌 낭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요즘 젊은이들은 당시만 못한 것 같다.

이 책은 삶과 사랑을 탐구하는 신달자 시인이 오늘의 젊은이에게 띄우는 에세이집으로 누가 자신을 사랑하는지,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사랑의 상실을 전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지난 1988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사랑의 상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오늘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읽어도 세련된 문장력과 감성적 표현은 충분한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사랑의 상실을 세련되게 표현한 그의 수필집 '백치애인'을 한권쯤 독파하는 것도 의미있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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