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계룡수필 회원

천사의 집에 가면 영이란 아이가 있다. 영이의 꿈은 천사가 되는 거다. 어느 누가 꿈을 물어도 답은 천사다.

왜냐고 물으면, 이유는 옆으로 기어 다니는 친구를 가리킨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다면 천사가 되어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천사의 집에는 장애인 아이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 정신과 육체가 성치 않은 아이들이다.
부모들이 버린 아이들. 그중 영이는 신체적으로는 장애가 없다. 정신연령이 모자라는 것뿐이다. 무엇이든 가르쳐 주어도 이내 잃어버린다.

그리고 수없이 반복하여 묻는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것은 여간하여서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없다. 잠시 대화를 하려해도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여 한다. 그런 중에도 천사가 되고 싶다 말은 빠뜨리지 않고 꼭 한다.

그 아이에게 천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이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며, 나쁜 사람은 혼내 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내 유년 시절의 꿈은 고아원 보모였다. 어려운 살림에 입이라도 하나 덜자며 할머니는 막내삼촌을 고아원에서 지내게 했다. 난 그때 가끔씩 그곳을 할머니와 들리곤 했다.

고아원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간난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었다. 고아원 안에는 놀이터도 있고, 교회도 있었다. 우리 집에는 없는 책상도 있고, 언니, 오빠, 동생들도 많았다.

혈연이 아니고, 나보다 위면 형이고, 누나고, 언니고, 오빠였으며, 밑이면 다 동생이었다.  그들을 보살피는 보모가 있었다. 내 좁은 시야로 바라본 보모는 엄마와 같았다.

손만 닿으면 척척 만들어내고 깨끗해지게 만들어 놓는 슈퍼우먼 보모.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밥 먹여주고, 그림도 그려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놀아도 주던 보모. 못하는 것이 없는 보모.

자라면서 그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알았지만, 여학교 시절까지 보모의 꿈은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고아원 아이들과 천사의 집 아이. 둘 다 버려진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 둘은 차이가 있다. 생각할 줄 아는 것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아원의 아이들은 과거와 현제,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 불평과 불만도 있고, 싸움도 미움도 사랑도 존재한다. 잠깐씩 보았던 것이지만  잘 지내다가도 내 것 네 것에 뒤엉켜 싸운다.

그리고는 엄마를 부르며 운다. 분이 풀리지 않으면 나중에 가만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음에는 힘을 길러 널 눌러 버리고 만다며 눈물을 훔친다. 

이에 반하여 천사의 집 아이들은 다르다. 몇 년째 천사의 집에 있는 장애자들과 매주 만난다. 그들 대부분은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생각도 행동도 말도 어눌하다. 제 한 몸도 추스르지 못한다.

그들의 생각은 단순하다. 과거와 현재의 자신을 모르고, 미래의 꿈도 없이 그냥 산다. 그 중 영이는 제 나이도 기억하고 누가 왔다가고 안 왔는지도 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옆에 와 치근대며, 원장님이나 선생님들 모르게 속삭인다.

대개가 자그마한 핀이나 유리 보석이 박힌 반지 같은 것에 대한 욕심이다. 지나가는 말로 그와의 약속을 했다가는 계속 추궁을 당하게 된다.  한참동안 못 보았다가 만나도 잊지 않고 요구한다. 그런 영이가 천사가 되길 소망한다. 그것도 기어 다니는 친구를 위해서.

나는 영이에게 그 꿈을 이루게 하고 싶다. 그리하여 남을 돕고 착한 일 하고 나쁜 사람 혼내주는 일을 하게하고 싶다.

영이는 지금 천사가 되어가는 중이다. 친구가 밥을 먹을 때 도와주고, 옷을 입을 때 거들어 주며, 친구와의 다툼을 자제하고 양보하는 것을 키워간다.

그리고 오늘은 몇 번씩 그렇게 했노라고 하느님과 성모님께 기도한다. 천사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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