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행용 거제신문사장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있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인연의 크고 작은 조직을 통틀어 공동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 공동체의 행태가 나라건, 지역이건, 단체건 간에 모든 참여 세력의 의중과 바램을 대변하고 이끄는 리더가 있게 마련이고 흔히 우리는 이를 지도자라고 칭한다. 표현 자체가 주는 그대로 지도자는 다분히 정치적인 용어다.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정에서부터 교육과 생업과 집단적 욕구의 보람을 위해 진력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덕목을 마주치게 된다.

동서고금을 통해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는 언제나 역사의 정점에 있었고, 그 역량과 개인적 에너지가 주는 그릇의 크기와 쓰임새에 따라 공동체의 운명이 영욕과 질곡을 오가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 지도자의 표상이나 행태는 시기와 환경에 따라 전혀 다른 요구를 전제로 달라질 수 있고, 이미 지도자라는 표현 그 자체로 공인이라는 공헌적 의미와 분수가 주어지는 위치다.

지도자의 덕목을 살피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필요로 하는 환경과 분수의 해석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대의적인 자질론으로 국한한다면 몇 가지 공감하는 잣대를 생각할 수 있다.

그 첫째는 분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다. 여기서 분수라고 여기는 바탕의 대상은 스스로가 공인이라고 자각하고 인식한 후에 실행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해당한다. 우선 공인은 사리사욕을 초월하여 공익에 헌신하고 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제 아무리 유능하고 탁월한 식견이나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도 공인의 도리에서 사리사욕에 욕망을 맡기면 그 공동체와 지도력은 분수를 잃고 만다. 우리가 누구나 가지는 명예와 물욕과 소유의 유혹에서 공인은 벗어 나 있어야 한다.

공인이 만약 자신의 영욕이나 가정의 이익에 사로잡혀 직분을 이용하거나 신념에 소홀한다면 부정과 부패의 온상이 되고 그의 직능수행을 기대하는 공동체의 신망을 잃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것은 공인이라는 분수를 아는 첩경이어야 하고 오랜 언행의 경륜으로 타인으로부터 그렇게 여겨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생겨나는 개인적 자산이어야 한다.

둘째는 인의(仁義)를 알고 결단하는 능력이다. 공동체의 모든 사업, 이른바 업무라거나 공동의 지향성을 실천하는 모든 행위는 사람간의 유대와 능력을 조화하고 판단하는 작업이다.

매사가 사람으로부터,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재를 등용하고 상대를 두루 공평하고 유익하게 기여하는 힘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옳을 일이다.

여기에 관한 동서고금의 온갖 고사나 경험들은 모두 인간이 지닌 상호간의 의리에 대해 크고 작음과 선후를 잘 알려주고 있고, 그 초심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교훈으로 알려주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를 통 털어 변치 않는 인의가 있다.

‘약한 자 앞에 교만하지 않고, 강한 자 앞에 비굴하지 않는, 정정당당한 인의의 기준과 신념이라는 덕목을 요구한다. 앞 서 열거한 공인의 자질은 이미 이를 내재하는 인품을 요구하겠지만 끊임없이 이를 수행하기 위해 현관을 나서는 공인 앞의 거울처럼 자성하고 자숙하는 품성을 대변하는 대목이다.

비록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염치 때문에 스스로가 덫을 파거나 소홀해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겠으나 스스로 인의를 배반하지 않는 결연한 자세와 언행을 잊지 않는 일이 곧 지도자의 자세라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바탕이나 자질에 대한 견해는 형편과 생각의 척도에 따라 이견이 있겠지만 공사간의 수많은 갈등과 경험으로 얻어 낸 근간을 요약한 이야기일 뿐이다.

가끔 우리는 분수나 신념, 결단이나 약속, 공익이나 사익을 막론하고 그저 긍정하고 웃는 표정을 일컬어 ‘사람 좋은’ 표현을 남발하거나 그렇게 여겨버리는 우를 범하곤 한다.

지도자가 지닌 공인의 희노애락이 동반되어서는 안 될 대목이다. 스스로를 자애하고 믿어주는 도량만큼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의 외롭고 당당한 자세를 본다는 일이 그리 흔치 않다는 각박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생각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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