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타 칼럼위원

▲ 법타 스님/거제불교 거사림 지도법사
옛날 우리나라는 호랑이가 많아 '호랑이의 나라'라고 불렸다.

호랑이에 의한 피해, 호환이 두려워 제를 지내면서부터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에서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신(산신)으로 바뀌었다. 십이지의 호랑이는 방위상 동북동 방향, 시간상 오전 3시에서 5시, 달력으로는 음력 1월을 지키는 신이다.

전래설화 속의 호랑이는 효자, 의인, 약자를 돕고 변신술에 능한 영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동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의 호랑이는 어떨까.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타고다니는 동물이 호랑이다. 문수보살이 중생에게 지혜를 전할 때 호랑이와 함께 나타난다. 불교에서 호랑이는 위엄과 용맹함, 지혜를 수호하는 영물로 인식된다.

당대의 선지식을 호랑이라 지칭한다. 생전에 '가야산 호랑이' 성철스님, '가지산 호랑이' 인홍스님, '조계산 호랑이' 활안스님으로 불렸다.

부처님의 전생 설화에도 호랑이가 나온다. 석가모니가 전생에 보살이었을 때, 우연히 굶어 죽어가는 어미 호랑이와 일곱 마리의 새끼호랑이를 만나자 스스로 몸을 보시하여 호랑이 가족을 살렸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벗고 호랑이의 먹잇감이 됐다는 내용이다.

가야산 백련암에는 불제자로 살고 싶어했으나 결국 본성을 이기지 못한 호랑이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자승 한명과 수행하던 백련암 주지 백련선사는 어느날 범상치 않은 호랑이 한 마리를 불제자로 들였다. 호랑이는 육식을 일체하지 않고 예불에 참석하며 수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동자승이 흘린 피 한 방울에 억눌렸던 본성이 되살아나 호랑이는 동자승을 먹어 치웠다. 크게 노한 백련선사는 도끼로 호랑이의 앞발 하나를 잘랐고 호랑이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백련암 근처를 배회하다 사라졌다.

전국 사찰의 산신각에는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탱화가 있다. 호랑이의 변화신인 산신을 크게 그리고 호랑이는 산신 앞에 정답게 시자로 표현된다. 산신신앙이 불교와 합쳐진 과정에서 호랑이는 나한이나 스님을 보호하는 수호신으로 바뀌게 된다.

나한탱화에서도 산신도처럼 옆이나 무릎에 자연스럽게 호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되는데, 산신사상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장탱화나 시왕탱화의 두우 또는 마두나찰의 머리가 호랑이로 바뀌는 것도 호랑이가 산신의 안내자 역할에서 염라대왕과 현실세계를 연결해주는 안내자 역할로 확장되는 의미가 담겨있다.

수원 팔달사와 서울 화계사의 벽화에는 토끼가 호랑이게 담배를 물려주는 정겨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예천 용문사 산신도에서는 푸른 관을 쓰고 붉은 도포를 입은 산신이 편안한 자세로 호랑이의 등에 기대어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다.

인자한 모습의 산신과 해학적으로 그려진 호랑이의 조합에는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면서 호환을 막고자 했던 조상들의 재치가 가득 담겨있다.

또 불교와 관련된 설화 속의 호랑이는 스님을 외호하면서 제를 받거나 절을 창건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삼국유사 권 제5의 '김현감호'에 전해지고 있는 김현과 호랑이 처녀의 애절한 사랑은 "저를 위해 절을 짓고 불경을 보호하여 좋은 과보를 얻게해 주시면 낭군의 은혜 더없이 크겠습니다"라는 호랑이 처녀의 원에 따라 '호원사'를 창건하게 된다.

자장율사의 강원도 '삼화사' 창건설화에도 호랑이가 등장해 스님의 제도를 받는 이야기가 남아 있으며, 경기도 시흥의 '호압사'에는 이성계와 호랑이의 힘겨루기 끝에 방편을 써 호랑이 꼬리부분에 '호압사'를 세워 호랑이 기운을 눌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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