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안의 파시즘- 임지현 외 10인 著

▲ 이선화/주부·대학원생
몇해전 졸업생들이 후배들의 옷을 벗기거나 때리고 바다속으로 몰아넣은 사건이 아직도 기억난다. 뉴스나 주류매체에서는 이 사건들을 분석하는 기사들로 넘쳐났지만 별로 설득력 있는 결론이 제시되지 못했다. 그 사건들을 청소년 문화의 문제점으로만 접근하려 해서는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있는 학교폭력이나 왕따문제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우리사회의 총체적 문제이지 하나하나 결코 별개로 다뤄질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서태지의 '교실이데아'에 보낸 청소년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규율에 복종하면서도 또 동시에 거부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이중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흥미롭다라고 하는 부분이 있다. 청소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직적 위계질서에 젖어 있으며 동시에 권위에 취약하다.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나쁘고 복종하는 것이 착한 아이라고 길들여져 왔다.

'힘센 것이 장땡, 힘 약한 것이 죄'인 세태에서 어떻게 우리 아이들이 약자에 대한 배려를 몸으로 배울 수 있을까. 그저 도덕 교과서에 나와서 시험치기 전 외워야 할 항목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이들은 도덕시간에 칸트의 자유의지에 대해 배운다. 근대 헌법의 원리는 칸트의 '자유의지'와 분리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글자로만 이 자유의지를 배울 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학교에서 자유의지에 준해서 체벌하고 있지 못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규칙을 상호조율하고 어겼을 경우 처벌에 대한 상호동의를 구해야 한다.

그 이후에 아이들이 만약 규칙을 어겼다면 그것은 하나의 평등하고 고귀한 인간으로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기에 처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부모들과 선생들은 자기 기분 나쁘면 아이들을 체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은 자율이 아니라 복종을 배울 수 밖에 없다.

복종은 주인의 사고가 아니라 '노예'의 사고다. '해방 후 교육의 역사는 곧 학생 키우기가 아니라 길들이기의 역사였다'라는 부분은 이와 같이 연장선상에 있을 것이다. 사회가 죽이고 있는 아이들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은 어머니들에게 있다.

우리 아이들이 노예의 사고에 젖어들지 않도록 패배주의나 혹은 조폭의 사고에 물들지 않도록 우리 어머니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