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계절이 변하고 있지만 아직 겨울이라 생각하는 습관은 변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버려라! 습관도 소유까지도 버려라'고 강조한다.

습관의 작동 원리를 찾아낸다면 틀림없이 습관을 신속히 바꾸는 법도 알아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사회가 아름답겠는가.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습관도 각양각색이다. 우리 삶에서 일정한 패턴의 원인을 밝혀내서 변화시키는 세세한 방법은 사람마다, 또 행동마다 다르다.

하고 있는 일이 최고라고 여기며 새로운 것은 불만이고 불평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습관 중의 하나다. 따라서 남은 미흡하고, 자신은 손해라는 습관이 우리 사회에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

습관을 버리면 진리를 알게 된다.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수행을 해야 한다.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자신이며, 마음속에 번뇌가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모두 자신이 좋은 사람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신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남에게 보여줄 경향 때문에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그래서 번뇌와 직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자신과 사회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보다 좋은 춘삼월의 방향으로 변화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부정적인 습관을 먼저 알아야 한다. 생각 때문에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을 때가 오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사회로부터 받는 일보다 사회에 주는 일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받기만 한다면 그것은 탐욕이고 인색이다.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추운 겨울의 생각으로 진달래가 핀 봄의 시간을 비유하지 말자. 행동이 결과적으로 빚이 되고 삶의 짐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 움직임이 서로가 주고 받으면서 배려해야지, 주고 받으면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조화로운 삶이 되지 않는다. 주고받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라 말 한마디, 몸짓 한번도 포함되기 때문에 정다운 마음으로 우리의 습관을 변화시켜야 한다. 차가운 마음과 습관을 버리고 봄의 따뜻한 마음이 사회에 따뜻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 마지못해 주는 것은 나누는  일이 아니다. 마지못해 하는  그 마음이 상대편에 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마음의 거울에 붉은 것을 갖다대면 우리 역시 붉은 것을 비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붉은 것을 치운 뒤 하얀 것을 갖다 대면 우리 마음의 거울은 여전히 '붉은 것'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붉은 것보다는 하얀 것이 낫지 않을까?', '다음에 다시 붉은 것이 나타날까?' 혹은 '지금 앞에 있는 하얀 것은 좋지 않아. 붉은 것이 더 좋아 아니야, 아니야. 하얀 것이 더 좋아…아, 잘 모르겠다'하고 생각한다. 하얀 것이 앞에 있지만 우리 마음은 언제나 그것을 '제대로' 혹은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이는 다른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습관이다. 우리는 이처럼 언제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

아주 강한 욕심이나 집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순간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해 자비롭게 행동하는 대신 이 세상의 좋고 나쁨에 집착한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부처다. 모든 것이 공해서 결국 모든 것이 같다는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 사는 삶은 모두 중생을 위해서 사는 삶이며,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삶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비심은 저절로 나온다.

대보살의 삶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모두 부처다. 만물이 '공(空)'해 결국 모두가 하나라는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 삶은 모두 중생을 위한 삶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삶이다.

자비심은 절로 나온다. '나'가 있으면 욕심이 나오고 모든 것과 내가 분리된다. 개구리는 봄에 울고 여름에도 운다. 그러나 봄에 우는 개구리는 새로울 뿐이다.

이제 마음도 몸도 쉬어가며 집착과 습관을 버리자. 우리 사회는 아름다울 것이고 이것이 법의 세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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