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희 계룡수필회원

꽃골이라는 동네를 찾았다. 그곳에 천연염색을 하는 곳이 있다는 얘길 듣고 무작정 찾아 나선 거였다.

잘 몰라 주위를 몇 바퀴 돌다 입구에 다다르니 풍경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역시 천연의 재료들이 널려있어서였을까. 자연의 풍경들이 정겹게 와 닿았다.

염색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이미지가 정말 소박하고 순수해 보였다. 아니 정갈했다.

그녀는 나를 처음 대하는 터였지만 반가워했다. 기분이 좋았다. 그녀의 친절에 그만 매료되어 염색을 꼭 배워보리란 마음이 생겨났다.

천연염색이란 말 그대로 자연 속에서 얻는 갖가지 재료를 가지고 천에 물을 들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연 친화적이라 화학섬유에서 얻을 수 없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

또 우리민족의 미적 정서가 그대로 배어 있고 피부병이나 갖가지 유해 성분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

주변의 각종 식물, 꽃, 열매 등에서 얻어지는 오묘한 색상이 더욱 매력을 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각종 색상을 나타낼 수도 있으며, 같은 재료라 하더라도 양이나 매염제의 종류, 반복횟수, 천의 재질 등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을 나타내 염색할 때마다 새로운 색상을 만나는 기쁨을 맛본다.

먼저 염색에 대한 기본 상식부터 배웠다. 물들이기 전에 천을 깨끗이 하는 작업을 정련 이라고 한다.

견직물은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직조 과정에 있어서도 면직물처럼 표백제나 화학 풀을 많이 첨가하지 않기 때문에 정련이 그다지 까다롭거나 힘이 들지 않지만, 면을 정련 하는 데는 시간과 노동력이 너무 많이 투자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무엇보다도 일하는 사람의 정성과 노력, 정직성이 요구된다.

천연염색 정련을 하면서 화학 성분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광목은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물을 갈아주며 일주일 정도 정련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약 오일간은 엄청나게 심한 표백제 냄새와 누렇게 썩은 물이 계속해서 나온다.

이제까지 저런 옷을 입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정련만이라도 세제나 화학성분을 첨가하기 보다는 좀 힘이 들더라도 따뜻한 물을 계속적으로 바꾸어 주는 방법으로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부드럽고 포근해서 좋고, 천 자체의 순수성을 느낄 수 있는 면을 소재로 갖가지 색깔을 나타낼 수 있어서 더더욱 좋다.

깨끗이 씻은 천을 말려놓았다. 그리고 솥을 깨끗이 씻어 염색재료를 넣고 한참을 삶았다. 이물질이 들어가면 고운 색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실크스카프를 염색했다. 천은 뜨거운 염색물을 뒤집어쓰기를 여러 번 반복한 후 비로소 완성되었다. 말려서 다린 스카프는 멋진 작품이 되었다.

은은한 색깔이 내 삶의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가 만든 스카프는 정성을 들인 만큼 귀한 물건이 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선물을 받았다면 이렇듯 의미 있는 스카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천연염색은 색이 은은하다. 그래서 천연염색이내는 빛깔은 튀지도 않고 수수해서 오래도록 싫증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곱게 늙은 사람을 보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데 너무 치장을 많이 하고 성형한 흔적이 보이면 왜인지 자연스럽지가 않아 거부반응이 온다.

처음엔 눈에 확 들어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다 보면 싫증이 난다. 우리 사람들도 인위적으로 꾸며서 만들어내는 모습보다 자연스러움을 오래도록 잘 가꾸고 유지하는 것이 오래 가지 않을까 싶다.

가끔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작업을 해볼까 한다. 때론 내가 먼저 자연 속으로, 아니면 자연이 날 부르도록 두 귀를 열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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