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위숙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모두들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았는지 ‘잊혀진 계절’이라며 시월의 마지막 밤인 그 날을 노래하던 그때,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스물한 살의 너를 전송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엄마는 어떻게 해서든 집결지인 춘천까지 바래다주고 싶었지만 너는 부모의 동행이 되레 부담스러웠던 듯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춘천까지 동행해준 의리 깊은 네 친구들이 있는 것만 해도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훈련소로 향하는 네 뒷모습을 보면서 눈시울을 적시게 될 내 연약함을 탓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분명 수시로 훌쩍거렸을 것이다.

엄마는 네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직 명령복종의 낯선 세계에서 부딪혀야 할 두려움이 슬플 따름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세대의 격동기를 거친 경험자로서 아마 속으로 굵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아끼고 애지중지하는 살가운 정을 어디에 비하겠느냐.

입대를 앞두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 조선소의 땀 냄새를 맡아야만 했던 너를 생각하면 한없이 안쓰러워 너를 보내는 엄마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랬기에 마음에 더 걸려 훈련소 가는 길만큼은 편하게 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께 술잔을 받으면서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란 흐르는 물처럼 아무런 경계가 없는 사이임을 알았을 터이고, 새삼 아버지의 깊은 정을 느꼈으리라 여긴다.

늦은 밤까지 어묵 국물에 따끈하게 데운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구나.

참, 노래방에서는 너의 노래솜씨를 가문의 영광이라며 감탄을 하면서 우리 모두 손을 잡고 함께 불렀던 ‘너를 보내고’,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이등병의 편지’를 열창하곤 했었지…. 

군 복무 기간 단축과 같은 선심성 대선 공약들이 매스컴을 장식할 때 입대를 하게 되어 무척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라의 지도자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자진 입대한 젊은이들에게 긍지를 심어 주고 엄동설한에 자식을 군대에 보낸 뒤 밤새 뒤척이는 부모의 마음도 헤아려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안타깝구나.

아버지 엄마는 네가 이런저런 헛소리에 흔들림 없이 이십사 개월 만기복무를 마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군 생활 잘 하리라 믿는다.

햇볕정책도 평화공존도 남북화해도 좋지만 국가 지도자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청춘을 이년 넘게 병영에서 보내는 땡볕과 혹한 속에서 매복이나 보초를 서는데 대한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군복무를 함으로써 나라 경제가 발전되고 가족들이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가장 보편적인 생각들이 가장 절대적인 신념으로 자랄 수 있어야 함은 물론, 그 신념 속에서 사회가 군 제대자를 우대해 주는 확신이 들어야만 장병들은 졸음과 추위를 참아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들아. 훈련을 마치고 네가 어느 곳에 배치될지는 염두에 두지 마라.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임지나 보직에서도 의외로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최전방 골짜기에 가더라도 훌륭한 상관과 좋은 전우들을 만나면 가족 못잖은 전우애를 느끼며 보람차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집단생활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네 인생에서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는 값진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엄마가 알고 지내는 분의 자제도 공부에 도통 관심이 없던 아들이 군 제대 후 뒤늦게 학업의 중요성을 깨쳐 면학을 한다더구나.

공부를 잘 하라는 게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때가 맞아야 하는 법이기에 이후 부단히 노력하기 바란다.

네가 군에 입소한 지 두 달 반이 다 되어가는구나. 훈련소 힘든 고비도 잘 넘겼고, 네 말처럼 조선소에 다니면서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훈련쯤이야 능히 견뎌내었으리라 생각한다.

할머니를 비롯하여 가족들이 네 건강과 무사히 군복무를 잘 마치기를 기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이 순간 네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오직 이 한 마디 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그래야만 결코 썩지 않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남을 배려하고 돕는 아름다운 청년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먼 어느 날 어쩌면 지금의 너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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