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선 계룡수필 회원

올 들어 비가 잦다. 빗물에 몸을 씻은 화초들이 젖은 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잎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바람의 흔들림에 몸을 말리는 모습이 사뭇 수줍다. 채 마르지 않은 물기 때문일까. 싱싱한 화초들이 제 빛깔 이상으로 빛이 난다. 아까부터 마당에 줄지어 서 있는 화분을 보고 있다.

출·퇴근 시에 또는 잠시 잠깐 짬을 내어 이곳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맑아진다. 대가를 거론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의 욕심으로 하마터면 이 즐거움을 모를 뻔했다고 생각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이곳에 화분을 옮겨온 것은 불과 며칠 전이다.   

화초를 좋아하는 덕분에 하나씩 사 들고 온 것이 어느 사이 좁은 베란다에 가득했다. 거실도 주방도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배치할 때는 나름대로 신선함을 줄 때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부쩍 생기를 잃었다. 시들시들한 것은 물을 듬뿍 주어 하루쯤 밖에 두기도 하고, 영양제를 넣어 주기도 했다. 창을 열어 열기를 조절하기도 하였다. 딴엔 정성을 들이는데도 말라 죽기도 하고, 잎이 녹아내린 것은 아예 뿌리까지 썩어 있기도 했다.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바스러진 화분을 버릴 때면 또 애꿎은 정원타령을 해댔다. 정원 있는 주택은 언제나 나의 꿈속의 집이었다. 화분에 키우는 화초도 있겠으나 나는 늘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잎이 너른 활엽수도 좋았다.

야생화나 풀꽃이면 어떠랴. 일일이 이름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크고 작은 것들이 서로 어우러진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이런 날이면 그 생각은 어김없이 머물다가곤 했다. 현실 불가능한 일인 걸 알면서도 그 타령은 좀체 버릴 수가 없었다.  

요즘 같은 날이면 타령이 아니라 소원이 되기도 한다. 계속되는 장마에 베란다에 놓인 화분에서는 유독 눅눅한 냄새가 났다. 진드기들이 생기고, 곰팡이들은 하얀 타일 벽에 진을 쳤다. 심지어 작은 벌레들이 여기저기서 기어 나왔다.

햇볕 안 드는 실내에서도 잘 자란다는 행운목만 남겨두고 화분을 옮기던 날은 시원함과 섭섭함이 교차했다. 장마 비가 조금 잦아든 오후였다. 사실 화분을 옮긴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나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동안 나는 화초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은 만들지 않고 그저 물이나 주고 간간이 영양제나 넣어 주면된다고 여겼다.

우선 가까이 두고 보는 즐거움에 빠져 그들에게 필요한 환경을 만들지 못했던 것이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마저도 그들에게는 자연 그대로의 영양제라는 것을, 근사한 정원이 아니라도 갑갑한 안이 아니면 어디든 자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생각은 하고 있었으면서도 딴엔 정성을 쏟았던 터라 쉬이 옮기지 못했던 것이다.

화초들은 다시 생기를 찾았다. 몰아치는 거센 바람도 견뎌내고 쏟아지는 폭우에 온몸 찢기는 아픔을 감내하면서 제 빛 이상의 빛을 한껏 뿜어내고 있다. 나는 오늘 저들의 몸짓을 보면서 진즉 옮기지 못했음이 못내 미안함이 남는다.       

화분이 놓여 있던 베란다는 마루를 만들었다. 바닥재는 안방에 깔린 것과 비슷한 색상으로 맞추고 닫혀 있던 창을 열었다.

마루와 방이 하나의 공간이 되었다. 습한 냄새도 진을 치던 곰팡이들도 사라졌다. 모든 것은 각자 제 위치에 있을 때 조화롭다는 것을 느끼는 이 순간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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