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귀식 칼럼위원

민귀식 새장승포교회 목사
이조시대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선비가 집안 일로 용무가 있어서 다른 곳에 출타를 하게 됐습니다. 오랜 시간을 가다가 보니까 그만 반드시 가지고 가야만 하는 서류를 집에 두고 그냥 떠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금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가족이 잠든 시간, 한밤중에 자신의 집에 도착하게 된 이 선비는 방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뜰에서 이상한 신발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자신도 전혀 보지 못했던 남자의 신발이었습니다.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니 머리를 빡빡 깎은 웬 사내와 함께 자신의 아내가 다정히 안고 잠을 자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 선비는 자신의 집에 있는 도끼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기 부인을 끌어안고 잠을 자고 있는 그 사내와 아내를 향해 내리찍으려고 하는 순간, 선비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글귀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 글귀는 다름이 아니라 "忍之爲德(인지위덕)"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참으면 덕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려 참아보기로 결심하고 들었던 도끼를 방바닥에 놓고 호롱불을 켜서 자세히 살펴보니 머리를 빡빡 깎은 그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승이 된 자신의 처제였다고 합니다. 여승이 된 자신의 처제가 시주를 얻으러 다니다가 언니 집에 와서 오랜만에 만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곤하여 지금 잠을 자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때 선비가 참지 못하고 화가 난 대로 도끼질을 했다고 하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됐겠습니까? 참으로 경악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게 되면 그 행동을 실천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것을 우리는 절제라고 합니다. 이 절제를 헬라어로 표현하면 '앵크라테이아'라는 말로서 "자기 통제"를 의미하는 말이요, "자기 관리"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절제를 표현할 때 "Self control"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관리하는 것,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이 바로 절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잠언25:28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온전히 관리하지 못하면 언제 어떤 불행이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5:16-17에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랬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쫓아서 사는 사람, 육체의 욕망을 쫓아서 사는 그 사람은 잠깐 동안의 쾌락을 누릴 수 있고 향락을 즐길 수 있고 기쁨을 맛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원한 즐거움과 기쁨은 누릴 수 없습니다.

거제신문을 애독하시는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진정 심혈을 기울여 잘 관리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눈에 보이는 재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아닐까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로 다스려 내 가족과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이웃들에게 참된 위로와 소망을 줄 수 있는 복된 삶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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