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내 계룡수필문학회원

낯선 전화를 받았다. 일상적인 목소리로 방문시간을 통보한다. 택배아저씨다. 내게 무엇인가 오는 모양이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부푼다. 받는 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기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꽃다발이 나를 반긴다. 장미꽃이다. 언뜻 보아도 꽃송이가 예사로운 숫자가 아니다. 백송이다. 이렇게 많은 장미를 받아보긴 처음이다. 누가 보냈냐고 물으니 말이 없다.

내 생일이다. 누가 보냈을까? 꽃 선물을 받아본 일이 거의 없으므로 누가 보냈는지 궁금하다. 남편? 아니면 아이들? 궁금증이 일었지만 카드 열기를 머뭇거린다. 남편이기를 기대하며 진한 감동을 즐기고 싶어서다.

한참 만에 카드를 확인한다. 엷은 실망감으로 남편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럼 그렇지. 당치 않은 기대로 마음만 상한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짠순이가 웬일로 이렇게 많은 꽃을 보냈누?”
고맙다는 말 대신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울 엄마에게 누가 그 많은 꽃을 보냈을까?”

되받아치며 능청을 떠는 딸아이가 오늘따라 더 없이 정답고 고맙다. 백 송이가 아니라 백만 송이의 꽃보다 더 값지게 느껴진다.

평소 꽃 선물을 잘하는 편이다. 아름다운 꽃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준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며 또 좋아한다.

그런데 꽃을 받는 일은 흔하지 않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되면 은근히 꽃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무심한 남편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 외식시켜 주는 것으로 할 일 다 한 듯 지나가 버린다. 그것도 어쩌다 가끔 있는 일이다.

남편의 마흔 여덟 번째 생일이었을 게다. 나이 수만큼 장미를 선물했었다. 한 달 앞서 남편의 생일이라 미리 꽃 선물을 해주면 내 생일에 당연히 받을 수 있으리라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착각이었다. 생일조차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남편의 무관심은 끝내 나를 실망시켰다. 작은 소망 하나도 알아주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했다.

오랜동안 기념일이 되면 기대하며 기다렸다. 설마 알고 있겠지, 무언가 해 주겠지 하며 눈치만 살폈다. 그러고는 잊고 지나쳐 버리면 혼자 속이 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못난 어리광이었지 싶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미리 달력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암시를 준다. 남편이 알아서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라고 선수 치는 것이다.

바쁜 일상에서 생일을 기억 못하는 남편을 야속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알게 한다. 내 잣대로 남편의 무관심에 갈등을 키웠던 지난날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세월을 보냈으니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 탓도 있으리라.   

저녁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퇴근했다.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간이다. 저녁 사 줄 테니 외출 준비를 하란다. 정장을 차려입고 외출한다. 같이 외식하는 일이 남편으로서는 최대의 생일 선물이니 마다할 수 없지 않은가.

저녁을 먹으며 곁들인 소주 한잔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오늘이 여태까지의 생일 중 최고의 날 같다. 속에 조금씩 쌓였던 야속함도 섭섭함도 그만 풀어져 버린다.

오랜만에 남편의 팔짱을 낀다. 정이 교차한다. 늘 같이 있어서 드러나지 않던 사랑이 오늘따라 밖으로 솟아나온다. 행복하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긴 생의 여정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안식처라는 생각을 한다.

딸아이가 보내준 백 송이의 장미가 나름대로 엄마에 대한 사랑이라면, 남편의 팔을 통해 내 몸속으로 전달되는 따뜻한 체온이 녹녹한 사랑이며 백 송이의 장미일 게다. 난 오늘, 눈으로 받지 못한 장미를 가슴 가득 세지 못할 만큼 안아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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