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계룡수필문학회원

“갱년기네요.”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뱉어낸 의사의 말이다. 심리적인 안정이 급선무라고 서운함을 접고 가족들 도움을 받으라 한다. 측은한 듯 연민의 눈길로 한참을 바라본다.

이게 어디 섭섭할 일인가. 축하할 일이다. 이제 생리도 끝이 나고 여성으로서 역할도 다한 셈이다.

한 남자와 인연을 맺고 어미가 되었다. 아이들도 탈 없이 장성하였으니 무사히 내 몫을 한 것이다.

남는 건 오롯이 나. 이제 이것만 생각해도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그간 여자라는 이름으로 감수해야 했던 사회적인 편견이나 구속, 가정에서 씌워졌던 굴레를 벗게 되어 참으로 반갑고 홀가분하다.

난 그저 인간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의무의 양이 축소되고 운신의 폭이 넓어졌으며 보다 자유로워졌다.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여자임을 잊지 않아야 했기에 더 버거웠던 지난 시간들. 왁자했던 젊음. 처절했던 중년이 갔다. 다가서는 노년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나 지금처럼 편안하고 평화로운 시절이 있었나 싶다. 격랑 뒤의 고요. 음미하며 즐길 일이다.

여자를 지탱하는 두 축. 여성성과 모성. 이것이 나를 지켜준 것이기도 했으나 족쇄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쭈그러든 가슴과 오그라든 자궁이 나의 여성이 소멸됨을 말해주니 이제 기꺼이 족쇄를 풀고 일어설 일이다.

그러나 모성은 참으로 질긴 본능이어서 더 집착하고 견고해지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그래. 내게 갱년기는 여성성의 소멸을 알리는 시기가 아니고 모성을 둔화시키는 시점으로 인식하련다.

아이들이 내 품에서 진즉 떠나갔듯 내 마음 속에서도 놓아버리자. 그들의 보다 자주적인 삶을 위해서, 보다 자유로운 나의 노년을 위해서. 

할 만큼 하고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최선을 다해 내 자리를 지켜왔으니 말이다.

나이 먹은 여자들이 용감해지는 것도 이 부분을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년도 없는 일상 속에서 이제 다소 휴식을 원한들 무에 그리 흉이 될까. 어깨를 활짝 편다.

주저하지 말고 자신에게 몰입할 일이다. 주어진 시간과 자유를 나를 위해 다시 구성하고 실행해야 할 책임과 권한을 가졌다.

어둡지 않을 노년의 불을 서서히 밝혀야 하지 않을까. 구차하게 자식들을 해바라기 하지 않으며, 무기력하게 사회에 기대지 않으며, 비겁하게 배우자에게 매달리지 않는 자유인으로서의 삶을 실행해야겠다.

스스로 먹이도 구하고 스스로 여유도 만들며 스스로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도 터득하리라.
그러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것이다. 나이만큼 깊어진 세상 보는 안목과 겪은 만큼 밝아진 사람 보는 지혜로 꿋꿋하게 내 길을 가야지.

가을 들녘을 처연한 주홍의 빛으로 지키는 감나무의 열매처럼 노년을 꾸며 보리라. 수평선 위에서 사위를 곱게 물들이는 노을이 될 것이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며 진료실 문을 나서는데 의사가 다시 한마디 한다.  “아주머니 정말 괜찮으시죠?”

걱정이 듬뿍 실린 목소리다. 어깨를 들썩 해 보이자 비로소 웃는다. 여자가 아닌 여자. 그녀를 힘껏 안아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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