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과 별 것 아닌 것의 구별이 문제

싱가폴 가는 날은 유달리 해가 길다. 계절적으로 봄을 맞는 3월 초, 우리나라는 오후 일곱시쯤이면 어스름이 내리련만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보는 남의 나라 일곱시는 한참을 일해도 될 것 같은 늦 오후 일 뿐이다.

우리나라와 싱가폴의 1시간 시차(時差) 때문일까,  벌써부터의 결론은 이르지만 셀러리맨 한 달 반 봉급에 해당하는 여행경비 자부담에도 무리하게 용기를 낸 것이 잘한 것 같다.

무엇을 얻을지, 어느 분야 얼마만큼의 소득으로 귀국할지는 모르지만 모두의 가슴에 희망이 부푼다.  한 치 앞을 모르고 사는 게 인생이라더니, 이때만 해도 우린 몰랐다.

김두환 의원의 골탕작전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설마 고장 난 만보기로 우릴 고생시킬 줄이야…. 감히 상상조차 못했다.

더운 김을 발산하는 싱가폴의 ‘창이공항’, 엄연히 수상이 왔는데도 준비된 의전행사는 물론 마중 나온 사람 하나 없다. 수상(首相)도 수상 나름인가 보다. 이름 뿐인 유수상 의원, 돌아가면 겨우 부인과 가족이 영접 아닌 마중을 나올지….

집에서부터 안고 간 감기기침에 밤잠을 설치지만 감히 어찌 책임감까지 떨치랴, 일정 따라 움직여야 하는 병색 짙은 원용진 국장, 발걸음이 천근같이 무겁다. 또 모두의 편의와 안전을 함께 지고 가는 김덕진 담당자의 마음도 다를 바 없다.

거제 조류박물관 건립사업에 도움을 자임하며 부지런히 설쳐대던 윤승성, 박재형 두 자문위원,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전신에 피곤이 묻어난다. 

4-5일간의 여정으로 그곳 새 공원이나 관광지를 정확히 평가한다는 것은 무리지만 그래도 본 대로 느낀 대로, 또한 나름대로 기술(記述)해야 하는 내 운명이 얄궂다.

대조적인 두 나라

인접국인 싱가폴과 말레이시아가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이 두 가지 차이다.

싱가폴은 좁은 국토를 최대한 활용, 산업화와 관광화를 병행, 육성하고 특히 별 것도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들어 관광 상품화 하고 있다.

새를 이용한 쇼나 센토사 섬의 음악 분수가 그러하고 전설의 동물 ‘머라이언(상반신 사자, 하반신 물고기) 공원도, 스리 마리암만 사원도, 또한 동물원도 그냥 보기 좋게 인공으로 조성했을 뿐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별 것인 것을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귀에도 익은 보루네오가구의 원목 원산지, 그 풍부한 자원과 빼어난 경관 그 어느 것도 내 세워 개발하지 못한 채 그냥 시류(時流)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다.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폴

총면적 695.0㎢(서울 605.4㎢), 인구 4백35만의 싱가폴은 본섬 외 50여개의 섬들로 이뤄졌다.

2006년 기준, 1인당 GNP 2만9천4백74불(한국 1만6천2백91불)이며 세계적인 비즈니스 무역 교통, 물류 및 금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이같은 싱가폴의 발전 비결은 다름 아닌 유연한 사고와 효율적 정부, 그리고 유능한 공무원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을 유치, 대규모 산업화 정책을 추진, 특히 80년대 이후 전자산업 등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개선했다. 싱가폴의 이같은 발전의 이면에는 효율성 높은 정부와 청렴하고 유능한 공무원들이 버티고 있다.

특히 독립 싱가폴 정치 지도자로 26년간 재직한 리콴유(이광요 李光耀) 총리는 세계 최고의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데 기여해 지도자의 중요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곳은 관광자원이 거의 없음에도 연간 1천여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며 관광상품은 주로 다양한 이벤트와 주 평균 1회 가량의 축제, 그리고 쇼핑천국이다.

특히 ‘센토사’섬의 수족관, 케이블카, 분수쇼, 모노레일 등을 둘러 보면 또 한 차례 이곳 정부의 관광 재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별 것 아닌 것을 별 것으로 만들어 관광 상품화 한 것이다. 그러나 정말 별 것은 방치하고 있었다. 수족관 속 밑바닥서 세상을 포기한 채 엎드려있는 ‘듀공(dugong)’이 그것이다.

듀공은 아프리카 동해안으로부터 홍해, 말레이 반도, 필리핀, 호주 북부, 반다해 및 남태평양 여러 섬에 분포돼 있었고 오키나와에서도 포획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5백마리도 안 되는 멸종위기의 동물로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한 번을 보기 힘든 동물이다.

그런데 싱가폴은 이 처럼 귀한 듀공을 관광차원에서 제대로 활용치 못하고 있다. 일생에 한 번 보기 힘든 행운의 동물, 듀공에 얽힌 전설 또한 인간과 듀공의 비화를 낱낱이 소개할 경우 외국인 관광객들이 어찌 발길을 이곳으로 돌리지 않을까.

싱가폴의 상징, 37m의 높이, 3백20개의 비늘로 덮혀 있는 머라이언 상(像)은 전기를 이용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게 하지만 그냥 볼거리에 불과하다. 공중을 치솟는 물줄기서 오리를 닮은 캐릭터가 갖가지 묘기를 연출하는 등 불과 물, 영상과 음악, 그리고 관중이 어우러진 쇼가 이곳의 관광 상품 대부분이다.

진흙의 땅 말레이시아

면적 32만9천7백33㎢, 한반도 1.5배에 달하는 말레이시아는 2천5백만 인구, GNP는 6천5백불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곳 여건을 세계가 부러워한다. 1일 60만 배럴의 석유 생산에 천연가스, 목재, 대리석 등이 풍부하다.

이 나라는 전체 반도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위해 인구 7천만 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인구 증가정책을 쓰고 있다.

때문에 현재 인구 60% 이상이 24살 미만의 젊은 층이다. 세계 팜유(식물성 기름) 생산 80%를 차지하는 말레이시아는 이 기름으로 자동차 에너지를 개발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곤돌라(condola)를 이용, 해발 1천8백m 고원에 위치한 구름위의 공원 켄팅(Centing) 하일랜드를 향할 때면 발아래 펼쳐진 밀림 속에선 이름 모를 산짐승이 뛰고, 뒤따라 돌도끼를 든 원시인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 만 같다.    

 하지만 일부는 개발이 서툴다. 곳곳에 만들어 세운 원시인 동상이며 동물의 형상이 오히려 밀림 속을 휘 젖고 다니는 우리들 상상의 나래를 꺾어버린다.

이곳 켄팅 카지노(Csino)는 빈자리가 쉽지 않다. 모두가 돈이 넘치는가 보다. 수도 쿠알라룸플에서 고속도로로 50분 거리에 떨어진 행정 신도시 ‘푸트라자야’는 인공 호수가 장관이다.

지난 1997년 시작, 오는 2010년 완공 목표인 이 사업은 주택 5만2천여 채, 33만 인구를 수용한다는 계획이다. 뷔페 형식의 일식 집 사이사키(Saisaki)는 세계 각국 사람들로 붐빈다.

이곳 1백70종 넘는 음식중에는 가장 비싸다는 상어지느러미 요리 ‘삭스핀’이나 제비집 요리, 심지어는 우리의 입맛을 겨냥한 듯 꽃게 찌개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의 모든 것은 전반적으로 서툴다. 2백72계단 바투동굴의 힌두교 사원, 페트로나스 쌍둥이 빌딩, 주석 제조공장, 모두가 관광객 맞이에 서툴고 새 공원, 난초공원, 나비공원 등도 주어진 환경에 비해 개발이 서툴다.

▲ 거제면 내간리가 고향인 박헌규 서기관. 싱가폴 한국대사관에 근무

 ■ 결론

역시 우리의 땅 거제는 아름답다. 그리고 그 곳 사람들은 위대하다. 우리의 눈에 익은 자연경관이 보기 좋고 철따라 꽃피는 4계절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세계 곳곳에 뿌리내린 거제의 얼은 자랑스럽다. 싱가폴에 머무는 동안 조석(朝夕)으로 찾아와 우리의 궁금증을 풀어주던 싱가폴 주재 한국대사관 ‘박헌규 서기관(53)’, 그는 거제면 송곡 출신이었고 말레이시아 국가가 인정하는 주석제조 공장 ‘여성 홍보부장’의 외갓집이 장승포다. 모두를 정리하고 트랩을 오르는 우리는 이곳을 떠나는 아쉬움은 없다.

다만 닷새 피곤에 어디서든 눈 붙이면 편하지 않은 곳이 없을 뿐이다. 비행기 좌석도 미니버스 안도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곳 여정(旅程)을 자막처리를 곁들여 녹화 방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무리해서 병날까, 어쩌다 다칠까 서로를 아껴주던 일행들, 이번 여정에서 가장 큰 소득은 소중한 우정의 재발견이다.

농담처럼 내 뱉은 말, “푸트라자야에서 형제가 둥지를 틀자”- 일행속의 대화- 주고받는 말까지 사랑스럽다. 자칫 오해로 아름다운 우정을 잃을 뻔 했던 지난날의 경솔함을 탓해 본다.

계속해 피곤이 엄습하지만 비몽사몽(非夢似夢)간에도 머릿속에 각인(刻印)되는 게 있다. 귀국하면 제일 먼저 챙길 것, 김두환 의원의 허리띠에 장착된 ‘만보기’ 교체다.

점심식사시간 1시간을 제외한 8시간 강행군에도, 또한 9시간 이상의 쉴 수 없는 강행군 때도 그의 대답은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멀었다. 오늘 겨우 3천보 밖에 안 걸었다.”

이같은 엉터리 만보기를 나조차 무관심하게 방치하면 다음 견학여정에서 분명히 또 한 팀이 골병들어 귀국할게 뻔하다.

새 공원과 싱가폴, 말레이시아 기행, 연재를 마무리하며 이번 견학에 동참한 일행 모두의 행운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번 여정이 참가자 모두에게 인생 참고서가 되기를 또한 이같은 고행이 거제시 조류박물관 건립사업에 한 낱의 아름다운 씨앗으로 움트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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