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음력 4월, 거제는 '봄이었고, 만세였다'

거제 아주 만세운동 재현 굿, 올해로 두 번째 열려
내달 12일 '아주 5·2독립만세운동 재현 기념행사'

기미년 음력 4월, 아주장터에서 터진 외침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음력 4월 3일. 아주장터(현 대우조선해양 부지)에 모인 군중 속에서 외마디 외침이 터져나왔다.

"대한독립만세!!"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이 거제에서도 본격 시작된 것이다. 고종황제의 국장에 참여하고 귀향한 선각자들이 중심이 됐다.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윤택근 이주근 이인수 이주목 주종찬 권오진 등은 거사를 위해 음력 4월2일 밤 태극기를 만들고, 다음날인 4월3일 일운면 아양리 바닷가 당등산에 집결했다. 당시 아주와 아양리는 거제의 토호들이 살고 있던 중심마을로 도내에서 유일한 개화의 중심지였고, 재력과 새로운 문물의 집결지였다고 전한다.

또 고려시대부터 아주현 치소가 있었던 곳으로, 지방세력과 대중의 지지를 받는 활동이 용이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은 마침 아주장날이라 장터에는 농어민과 상인 등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회자 윤택근이 대한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대한독립을 염원하는 민중들의 함성이 장터가 떠나갈 듯 울려퍼졌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은 그렇게 들불처럼 일어나 아주와 옥포 등지에서 2,500여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화급해진 일본 경찰이 쏘아대는 총소리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이 하나 둘 쓰러졌다. 시체를 넘어 쏟아져 나오는 주민들과 일경들의 몸싸움 끝에 아주장터는 피로 물들었다.

특히 주종찬과 옥포지역 주민들은 배암바위 모퉁이 길을 달려 옥포로 나아가며 계속 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높였지만, 총칼을 든 일본헌병에 의해 해산됐다.

6일까지 계속된 만세운동이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일본헌병은 아양과 옥포일대를 샅샅히 뒤져 윤택근 등 주동자를 검거했다.

붙잡힌 청년들은 온갖 고문에 시달리면서도 자주독립의 의지를 굳건히 하는 등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주장터서 울린 그날의 함성, 5월12일 재현

93년 전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해 아주장터에서 울린 그날의 함성이 내달 12일 재현된다.

아주동번영회(회장 윤상찬) 주관으로 열리는 '아주 5·2독립만세운동 재현 기념행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 열리는 이번 행사는 '1919년, 거제는 봄이다, 만세다'는 주제로 아주동 3·1운동 기념탑에서 시작된다.

'제2회 아주 5·2독립만세운동 재현 기념식'이 끝나면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선조들이 충절을 바친 역사의 현장에서 두루마기와 치마저고리 등 당시 복장을 한 후손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에 나선다.

3갈래로 나뉘어진 시민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마친 뒤, 아주공설운동장에 집결해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길 예정이다.

올해는 마당극 전문단체인 '극단 갯돌'의 배우들이 참여해 기미년 만세운동 당시의 생생한 모습이 재현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아주동사무소 앞 옹벽에 3·1운동을 소재로 한 LED조명을 설치하는 등 주민들이 공감하는 문화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윤상찬 아주동번영회장은 "아주장터는 아주만세운동의 진원지로 독립을 향한 선조들의 흔적이 남은 곳이지만, 현재 시민들은 아주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는 물론 사실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번 행사로 아주만세운동을 재조명하고 올바른 역사 교육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3·1운동기념탑이 세워진 곳은 공간이 협소하고 경사가 있어 여러 사람이 모여 뜻을 기리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공원을 조성해 아주만세운동의 품위를 격상하는 등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