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계룡수필 회원

그의 이름은 만득이다. 아니 내가 지은 이름이다. 한 번도 불러 보거나 누구에게 말하지 않고 나 혼자서 지칭하는 이름이다.

오늘이 그가 우리 집 짓는 일에 끼어든 지 석 달로 접어드는 날이다.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눈인사 한번 한 적이 없다.

언제나 처음 본 사람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무표정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말을 걸거나 해야 할 말은 없다.

아니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는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냥 먼 거리에서 부담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만 할 뿐이다.

도도하거나 거만해서도 아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성격은 나이를 먹어서도 고치지 못하는 나의 단점이다.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서다. 그런 내가 부담 없이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이 그다.
늘 자기 할 일만 하기에 오든지 가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한 번 지시한 사항을 미루거나 잊는 법도 없다. 시키는 일에는 군소리 한번 내지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쉴 때에도 밥을 먹고는 곧 하던 일을 하거나 물건을 나른다.

주변을 치우고 물을 나르며 등짐을 지고 층계를 오른다. 모든 잡일은 혼자 도맡아서 한다.
말이 없는 그가 유일하게 말을 주고받는 사람은 일을 주는 사장과 그의 부인, 그리고 공사장 이웃에 사는 할매다.

할매는 그와는 반대다. 아침이면 우리보다 먼저 공사현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잠시 동안 있었던 상황들을 보고 한다. 어쩌다 하루 이틀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한 나절 내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한 겨울에 외롭게 방에서 지냈어야 할 할매의 소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새로운 사람이 몇 명 왔고, 어디에서 왔으며, 무슨 일을 하고…, 할매는 주변의 일들을 그냥 넘기는 법이 없다.

언제 어떻게 알아냈는지 오고가는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꿰어낸다.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고 끝내 알아내고 이야기한다. 만득이에 대한 이야기도 할매가 전해 준 것이다.

나이는 쉰이 됐고, 결혼은 했는데 마누라가 도망을 갔으며, 늙은 부모와 함께 산다. 돈은 얼마를 받고, 귀가 먹어 보청기를 끼고 있으며, 좀 모자란다. 이 모두가 할매가 수집한 정보다.

이야기를 듣기 전과 들은 후 나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냥 지나치던 시선이 자주 만득이에게 꽂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들은 이야기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그렇게 말은 큰 힘을 발휘한다. 나와 상관없이 지나칠 수 있는 사람도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한 것일까. 그 만큼 힘이 있고 무서운 말을 우린 너무 쉽게 뱉는다.

인간은 말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한다. 말은 자기표현이며 상대방과의 의사소통이다.
말을 맛깔스럽고, 감칠맛 나게 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다. 코미디언 못지않게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즐겁다. 가라앉았던 기분이 살아난다.

그와 반대로 남의 말을 자주하는 사람이 있다.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시비를 걸어 다투며, 자기의 잘못된 것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사람.

얼굴을 알 수 없다 하여, 인터넷 안에서 상대를 비방하고 욕지거리를 해 부담을 주고, 끝내는 목숨을 버리게까지 하는 무책임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은 신중해야 하며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유대인들은 어릴 적부터 유머를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의 생활도 그렇게 바뀌길 기대해 보면 안 될까. 오늘도 난 만득이와 할매를 만나러 간다.

‘침묵이 금’이라 할 정도로 말이 없는 만득이와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이나 하듯 말이 많은 할매.  그 두 사람 속에서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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