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위숙 계룡수필 회원

그동안 MSN 대화를 가끔 저장해 두었다. 저장만 했을 뿐 잊고 살았다. 며칠 전 처음으로  파일 몇 개를 열어봤다.

아들이 군 입대를 한 이야기, 관계가 서먹해진 옛 친구랑 다시 잘해보고 싶으니 중간에서 말을 잘해 달라던 친구 이야기, 노트북 사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조언을 구한 것, 떨어져 사는 딸과 나눈 이야기, 수필을 쓰면서 글이 막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글, 친구들과 한 시간에 걸친 대화까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가까이 지내는 사람도 있고, 기억 속에 완전히 멀어진 사람도 있다. 어쨌든 재밌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실제 마음이 아닌 자기 암시 내지는 합리화에 대해서는 기록조차 어쩔 수가 없지 않을까 싶다.

가령 좋지 않았던 일을 간절히 잊고 싶을 때 ‘잊고 싶다’고 쓰지 않고 ‘모두 잊었다’라고 쓸 수도 있다.

잊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조차 기억나지 않을 때, 내 글을 보면서 ‘난 정말 쉽게 잊는구나.’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힘들 때 더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표정의 그늘은 숨길 수 없다고들 하지만 나는 오래된 사진을 보면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더더욱 모르겠다.

하지만 옛날 기록을 보면서 기뻤던 것은 걱정거리를 생각보다 쉽게 잊으며 살고 있다는 점이다. 가슴에 뭉친 응어리, 온 마음에 난 상처가 평생 갈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한편으로 소중한 것을 쉽게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쓸쓸해진다. 많지도 않은 친구들과 세상살이에 대해 이런저런 의논을 많이 해 왔다는 것이다.

자잘한 집안일로부터 사람 사이에서 부딪혔던 일까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다.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에 내가 외면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보면서,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주위 사람들이 힘들다고 외치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알아듣지 못하고 넘겼는지. 나의 기억을 편한 대로 조작해 놓았다는 것을.

사람과의 반응을 원래 성격, 이해심 부족, 지역성, 나이, 심지어 혈액형 등으로 합리화하면서 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자신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남의 소리라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힘들고 아프고 답답해하는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했어야 했다.  손바닥 둘이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만, 손바닥과 뺨이 부딪혀도 소리는 난다. 양방의 잘못이라고 해도, 결국 내 잘못이 큰 것 같다. 진심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까닭은 그래야 마음이 더 편하기에. 첫째, 더 하고 싶은 말이라든가 복수심이 생기지 않아서이고 둘째, 사람이 변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만 그나마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쉽기 때문이다.

지나간 MSN 기록을 보면서 만남과 헤어짐을 확실하게 인식하는 사람 관계보다는, 모르는 사이에 멀어진 사람들을 인식하는 것이 더 놀랍고 아프다.

내가 이런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니 신기하다. 어떤 경우에는 참 할 짓도 없었구나 싶다. 지금 이 나이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다시 사람을 잃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다. 잊혀져가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계속 복습할 것인가 아니면 지울 것인가.

기록에 지배당할 것인가, 지배할 것인가. 사실 내가 기록을 지배하려면 폐기하거나 왜곡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왠지 지배가 아닌 탄압 같기도 하다.

지금 나는 생각중이다. 그러는 와중에, 기록에도 기억에도 구애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현재에 충실하며 사는 게 좋겠다는 한가지만이 확실해졌다. 기록이 추억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 Dem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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