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눈이 온다고 해서 기다리지 않고 버스 지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인가.

부르지 않는 곳에서 계절과 시간은 소리 없이 떠나감을 생각하자. 이제 누군가를  불러보고 누군가를 위해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자. 부르는 기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관세음보살은 일체중생의 괴로움을 다 아시고 그 괴로움을 다 듣고 해결해주시는 분이다. 또 아주 큰 능력을 갖고 계신 분이다. 그분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이라 부른다.

천 개의 눈이 있어서 모든 중생 사회에 괴로움을 다 아시고 천개의 손이 있어서 모든 중생의 괴로움을 다 구제해주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절하게 그분의 명호를 부르고 그분께 귀의하면, 그분께서는 내 모든 괴로움을 다 해결해주신다.

간절하게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그분의 가피를 입어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관음기도 방식이 있다.

몹쓸 병에 걸린 사람이 병이 낫는다든지,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난다든지, 감옥에 갇힌 사람이 풀려난다든지,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살길이 열린다든지 전통적인 관음기도의 영험은 잘 알려져 있다.

괴로움이라는 것은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내 마음이 짓는 것이므로, 기도를 통해 사로잡힌 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도로서 나는 곧바로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지는 이치를 깨달아 알고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도둑질을 하다 경찰한테 들켜서 도망다니며 '내가 지금 잡히면 십년 감옥살이다.

관세음보살님! 나 좀 살려 주세요' 할 때 관세음보살은 분별하지 않고, 그 중생의 입장에서 도움을 청하는 간절한 소원을 알고 도와주는 분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관세음보살을 닮아야겠다. 관세음보살처럼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관세음보살 같은 대자대비하신 성인이 되겠다는 원으로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다.

관세음보살은 나와 남,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 황인종과 백인종, 남녀와 노소,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중생을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괴로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분이다. 적어도 '관세음보살을 닮겠다'라는 사람이라면 내 남편 하나정도는 구제하는 작은 관세음보살이 돼 봐야 하지 않을까?

남편한테 문제가 있을 때 내 입장에서만 남편을 보지 말고, 남편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얼마나 답답하면, 얼마나 힘들면 저리 술을 먹을까. 얼마나 답답하면 저리 화를 낼까. 얼마나 지치면 저렇게 힘들어할까?'이렇게 남편의 입장에 서서 남편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이럴 때 그 사람의 마음으로 보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므로'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소원을 들어주자'는 게 천수의 뜻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힘들고 남편만 좋아진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면 '머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아 미치겠다'란 생각이 들 것이다. 이럴 때 지금 누가 괴로운 걸까? 내가 괴로운 것이다.

'돈 버느라고 힘들겠다. (법륜)나 같이 답답한 사람 데리고 살려니 힘들겠다. 요즘같이 어려운 시절에 사업 하려니 얼마나 힘들까. 그러니 저렇게 술만 마시지. 내가 힘이 못돼서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마음을 내면 우선 내가 괴롭지 않다. 내 마음이 답답하지 않다. 이처럼 내가 먼저 자비심을 내면 괴롭지 않다.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답답해지고, 내가 괴로워지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미움이 생기지만 그 사람을 이해하면 내가 괴롭지가 않게 되는 것이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소리 없이 기도하며 진심으로 누구를 불러보자. 분명 변할 것이고 관세음보살을 닮겠다는 생각이 우리들 앞에, 아니 우리사회에 꼭 나타날 것이다.

어제는 내가 최고라고 했지만 또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지금은 내가 최고야 라고 하면서 온 세상을 다루고있다. 지금은 오직 마음의 중심에서 한 가지, 한 시간이라도 우리 사회의 추운 곳을 위해 기도하며 아름다운 비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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