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희 계룡수필 회원

새해 첫 날, 해맞이에 나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거리에서도 TV화면 속에서도 화사하고 활기차다.

아직은 세상이 살 만하구나 생각한다. 해가 바뀌어도 내어 걸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는 세월에 딸려가지 않고 팔을 벌리고 맞아드리는 삶은 새롭고 신선하지 않겠는가.
새 기분 새 마음으로 또 한 해를 기대하며 적극적으로 매진할 의사가 있음도 말해주는 것이다.
비록 작심삼일이 되어 사라진다 해도 소망은 삶의 에너지가 되고 활력소가 된다.

 나 역시 이때쯤이면 스스로에게 내거는 다짐이 있다. 참으로 작고 우스운 작심이다. 길을 건널 때 횡단보도만 이용한다는 거다. 새해 벽두부터 내거는 기대가 고작 그런 거냐고 비웃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몇 년째 계속되는 바람이지만 한 번도 그 해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사월에 어긋나기도 했고 다행히 시월까지 이어진 해도 있었지만 이월 중순쯤 무단횡단을 해버린 기억도 있다.

누가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데 고집스럽게 이 유별난 결심을 하고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는 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늘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싶어 몸살을 한다. 가끔은 지름길을 원하기도 하고 둘러가더라도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을 택한다. 안전하고 편안한 보도를 두고 샛길이나 닦여지지 않은 한적한 길을 가고자 함을 스스로도 가끔씩 의아해 한다.

그래도 여전히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나는 소망한다. 어쩌다 굉장히 단축된 지름길이 있어 뜻하지 않은 행운과 만나기를 소원하고 울퉁불퉁하고 험한 길이라도 숨겨진 감칠맛을 내는 길이 아닌 길을 가고 싶다.

무작정 길에 들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방황도 하며 긴장을 하고 싶다.

도중에 예기치 않은 일에 부닥쳐 곤욕도 치러보고 순발력을 발휘해 잠자고 있는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

사고의 전환과 발상의 비약으로 이어진다면 횡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슴 설레 보면 그 또한 좋지 않겠는가.

지치기도 하고 더러 사고도 나겠지만 남들이 다 같이 가자고 또 가라고 펼쳐 논 편안한 길은 그만 가기 싫다. 밋밋하고 획일적이고 시들해서 마땅치가 않다.

이렇게 황당한 꿈을 꾸는 내게 제동을 거는 작업이 횡단보도만 이용하기이다. 한눈팔지 않고 익숙한 길만을 가며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접기로 안전하고 변함없는 일상을 꾸리려 함이다.

부질없는 환상에 빠져 현실감을 잃고 허우적대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고른 길만을 가게 함이다. 

횡단보도만 가자는 소망을 올해 또 내걸어본다. 찻길로 겁 없이 뛰어들지 말고 낯선 길도 염두에 두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렇게 꿈을 꾸고 그 꿈을 삭히는 작업이 정해년 한해에도 이어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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