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내 - 계룡수필문학회 회원

봉수대에 오른다. 숲정이에 들어서자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의 소리가 청량하다. 참 정겨운 소리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다정히 안겨들 땐 정말 가슴속까지 포근하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켜켜이 쌓여 있는 숲길을 걸으며 스스로 초연해지기도 한다. 유한한 삶 비우며 살라고 무언의 가르침을 준다. 비우지 못한 무거운 마음도 산을 오를 때는 가벼워지니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예전엔 무서워 외면했던 산길이다. 청솔모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숨이 멎어 그 자리에 꼼짝 못하고 서 있었다. 한참 후에야 진정된 가슴으로 발걸음을 다시 떼어 놓던 길.

그러나 지금은 반갑고 정겹기만 하다. 자주 만남으로 해서 숲 속의 식구들과 친숙해졌음인가. 아마도 낯익음이지 싶다.

지세포 샛풍재에서 오 분만 오르면 봉수대에 이른다. 봉수대에 서면 지심도가 한눈에 다가선다.  사방으로 광활한 바다가 펼쳐 있고, 그 위로 솟아난 아침 햇살을 받은 은빛 물결이 갓 잡은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눈부신 정경이다. 높은 산위에서 밤에는 횃불(烽), 낮에는 연기(熢)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제도인 봉화.

이 제도는 처음 왜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다. 기록상으로는 고려시대 중기인 12-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곳이 일본과 가깝다 보니 그들의 침입이 잦아 설치된 모양이다.

원형의 봉수대 주위엔 온통 소나무 숲이다. 봉수대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은 모두가 밖을 향해 서 있다. 바다를 지키던 선조들의 넋이 깃든 것일까. 꿋꿋하게 선 소나무들의 그 기상이 사뭇 당당하다.

그러나 둥글게 쌓았던 돌담은 세월의 흐름을 반영하듯 곳곳이 허물어져 내렸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나 보다.

봉수대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왜구의 습격을 자주 받는 바다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던 봉수대는 오랜 세월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묻혀 있었다.

몇 년 전 지역문화재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동네의 가까운 산에 봉수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았기에 오르는 길도 없었다.

봉수대에 서면 당시 바다를 지키던 선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그 기상은 얼마나 당당했을까. 언제 출현할지 모르는 적을 지키며 지새운 밤은 그 얼마일까. 적막한 밤을 지키며, 아침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을 그 모습.

조국의 안위를 위해 날밤을 새웠을 그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조상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자 바다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섰다. 허나 직접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어찌 그때의 상황을 다 헤아릴 수 있으리. 멀리 물안개에 가린 대마도에서 서늘한 기운만이 전해온다.

아침의 공기를 가르며 다가서는 바닷바람처럼 오늘도 난데없는 바람이 불어온다. 자신들의 힘만을 내세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동해를 일본해라 주장하는 저 오만함을 보면서 이 봉수대에 서 있었을 조상들을 그려본다.

그 분들의 기상이었다면 능히 저 오만함을 제압하고도 남았을 터인데, 미약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봉수대를 오른다. 왜적의 침입을 알리고자 만들어졌던 이곳을 오르내리며 한 번쯤 봉수대의 의미를 되새겨 봄은 어떨지.

그리고 조국의 안위를 걱정함은 우리의 임무는 아닐는지. 그냥 제 몸의 건강만을 챙기는데 머물지 말고 역사의 흔적 앞에서 한번쯤 내 나라의 안위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따라 쪽빛 바다가 유난히 푸르다. 봉수대는 의연한 모습으로 먼 바다를 지키고 있다.
그 옆에 선 나의 눈에 우리 땅이었던 대마도가 물안개를 헤집고 희미하게 들어온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