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위숙 계룡여심 회

제가 사는 조그만 면소재지 거리를 걷다 보면 흔하게 맞닥뜨리는 문구가 보인다.

‘점포정리’ 혹은 ‘점포 세 있습니다.’ 라는 글이다. 저간의 어떤 사정이 있는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완강하게 닫힌 가게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다.

더군다나 ‘점포정리 세일’이라는 글이 붙어 있음에도 손님은 없고 물건만 어지럽게 놓여 있는 가게 앞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근간엔 이곳의 상주인구도 꽤 줄어들었다 한다. 그러자니 당연 초등학교 입학생 숫자도 줄어들고 멀쩡하던 학교들이 분교가 되고 폐교가 된다는 소식 또한 들린다. 하루가 다르게 면소재지인 이곳이 변화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한때는 오밀조밀 들어서 번창하던 가게들이 어느덧 듬성듬성 비워진 채 막연히 언제 올지 모르는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어쨌거나 이곳의 경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이유이건 앞으로도 그다지 좋아질 것 같지 않다는 불안감이 든다.

인터넷이 사람들에게 넓게 보급되면서인지 아니면 광범위한 대중매체의 발달이 원인이랄까. 그도 아니면 사통팔달 잘 닦여지는 도로가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환경의 쇼핑지를 찾아 차를 타고 달려 나간다.

내 돈, 내 마음대로 쓴다는 당연한 말씀을 재고해 보지 않더라도 자동차가 있기에 어디든 갈 수 있고 그곳이 어디이건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달려갈 수 있다는 논리가 사람들의 마음속을 지배해버린 탓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한 지역의 경제지표가 어찌 단순히 몇 가지 논리로 감히 가늠될 수가 있겠는가.

다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지금의 실물 경기라는 것을 어느 측면에서 바라보고 돌파구를 모색할 것인지는 사람에 따라서는 모두 다를 것이다.

가끔 너른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으로 가면 홈쇼핑이라든가 택배 딱지가 붙은 크고 작은 박스 뭉치들로 어지러운 쓰레기터를 발견할 때가 많다.

집집마다 내놓은 쓰레기들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쓸 사람은 쓰고 가진 사람은 여전히 많구나 하는 생각 끝에, 이러한 것들이 면소재지 경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너무 지나친 생각이라며 나무랄 일인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값싸고 질 좋은 것을 찾아다니는 것은 이 땅의 주부라면 다 하는 일이다. 그것 또한 새로운 관계의 확장이기도 하여 따지고 보면 나무랄 일도 아니다.

다만 내가 사는 곳의 물가가 너무 비싸다는 원성을 격하게 토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그런 사람들이 싸고 좋은 것을 찾아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간다는 얘기들을 한다.

일정 부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논리가 이곳을 점점 소외시키는 부분이라는 것을 아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있는 것을 내가 외면하는데 누가 와서 내 것을 지켜주고 가꾸어 주겠는가.

화장지 값이나 신발값이 대형마트보다 곱절 비싸고 질도 형편없기에 나가서 사는 것이라 가정을 해 보자.

기름 값이나 소요된 시간에 관한 제반 비용을 빼고도 남는다면 당연히 이곳의 모든 점포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문 닫히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홈 쇼핑으로 대형 쇼핑몰로 몰려가는 발을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볼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풍요로움을 위하여 내 것이 아닌 네 것을 생각해 보자.

조금 더 헐하다고, 조금 더 양이 많다고, 조금 더 편리하고 쾌적하다고 달려가는 마음들을 들여다보자. 정말 이러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폐허가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여기저기 비어 있는 점포들이 말라버린 우물처럼 변해가면 대낮에도 등불을 들고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보면 점점 살기 힘겨운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자꾸 더나은 곳을 찾아 떠나는 악순환이 올 것이다.

과연 남아 있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종이 한 장, 치약 하나를 사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사소한 마음 쓰임이 결국 당신을 위하고 나를 위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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