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진 변호사

철새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을 탈당하여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후보 편에 섰던 젊은 정치인 K가 그의 친구이자 나의 후배 변호사한테 팩스로 질의를 해왔다.

K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여당의 거물정치인과 영등포구에서 맞붙어서 당당히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서울시장에도 출마한 적이 있는 한 때 잘나갔던 친구였다.

질의취지는 「어느 주간지에서  ‘완전히 새됐네’라는 제목의 노래를 히트했던 가수 싸이의 몸에 그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표지에 싣는 등 그를 ‘철새정치인’으로 묘사하였으니 그것이 명예훼손이 되는지 검토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변호사가 나의 의견을 물어  나는 대뜸 ‘안 된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말해 주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이당 저당 옮겨 다니는 정치인을 흔히 철새정치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 정치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철새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철새는 그야말로 생존본능에 따라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하여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왔다가 되돌아가는 것인데, 그것을 어찌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목전의 이익을 위하여 그를 정치인으로 만들어 준 정당과 유권자를 배신하여 왔다 갔다 하는 정치꾼을 어찌 감히 자연의 섭리에 따라 고단한 삶의 여정을 묵묵히 수행하는 철새에 견줄 수 있겠는가!

결국 본건의 피해자는 철새정치인 K가 아니라 철새이다. 그렇다면 친고죄인 명예훼손죄에서 고소권자인 철새의 고소가 없으니 명예훼손죄가 성립 안 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클라크의 명언

정치인이 영웅인 시대는 갔다. 스포츠맨, 연예인, 경제인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금년처럼 대통령선거가 있는 해에는 1년 내내 정치와 선거가 전 국민적 화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여전한 현실이다.

지난 년말 한명숙 국무총리가 ‘정치꾼은 항상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올바른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말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미국의 성직자 제임스 클라크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것인데, 둘 다 ‘정치인’으로 번역될 수 있는 ‘politician’과 ‘statesman’을 한 총리가 전자를 ‘정치꾼’으로, 후자를 ‘올바른 정치가로 번역하여 그 뜻을 대비시켜 놓은 것이다.

우리 주변에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고, 금년과 같은 정치의 계절에는 수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웅지를 품고 구름처럼 몰려온다.

그런데 우리주변의 정치인들 중에서 ‘올바른 정치가(=statesman)’로 불릴만한 분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나의 과문(寡聞) 탓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오히려 정치꾼으로 불릴만한 정치인들이 훨씬 더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인들이 대부분 정치꾼으로 불리는 이유
첫째, 정치인들은 대체로 거짓말을 잘한다. 독직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어 포토라인에 선 정치인 치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라고 고개를 쳐들지 않는 정치인을 보았는가!

그렇게 기세 좋게 변명을 늘어놓던 사람이 불과 48시간도 채 안되어 구속되는 광경을 우리 국민들은 수없이 보아 왔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어디서나 똑같다. 그들은 심지어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약속한다.’는 흐루시초프의 말이 전혀 새삼스럽지도 않다.

둘째, 정치인들은 책임전가를 잘한다. 공천헌금 몇 억을 받아 놓고도 ‘아내가 해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며, 거액의 불법선거자금을 뿌리고도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우기는 장면을 우리는 불과 얼마 전에 생생히 목격한 바 있다.

셋째, 정치인들은 자신이 바로 전에 내뱉은 말을 뒤집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는 강심장과 두꺼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마치 ‘삼선짜장만 사주면 다시는 졸라 대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도, 채 소화도 되기 전에 ‘알고 보니 사천요리가 더 맛있다던데…’라고 하면서 떼를 쓰는 식탐(食貪)있는 어린아이처럼! 그러고도 아무런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정치인들은 나름대로 처세의 달인으로서 누구보다도 똑똑하지만 결코 훌륭하지는 않다. 영리하지만 현명하지는 않다.

정치인들에 대한 위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어느 나라 없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죽 했으면 미국의 독설가 앰브로스 비어스는 그의 명저 『악마의 사전』에서 【성나게 함(provocation)】을 ‘사람들에게 그의 아버지가 정치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했겠는가!

가장 명예로워야 할 직업, 정치인
반면,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인간으로서 최고의 명예로운 행위는 조국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법률을 제정하고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나라의 개혁에 진력하는 사람들이 최고의 명예로운 행위를 하는 자이다.’라고 했다.

즉 정치인이야말로 가장 명예로운 직업이라고 설파한 것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가 무엇보다도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가장 명예롭고 떳떳한 직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적 과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이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를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실천할 경륜과 능력이 있는, 그래서 퇴임 후에도 국민의 존경과 후배 정치인의 귀감이 될 수 있고, 따라서 클라크의 말처럼 ‘눈앞의 선거에만 매달린 정치꾼이 아니라 다음세대를 내다 본 훌륭한 정치가로 평가될 그런 인물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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