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광 칼럼위원

▲ 윤일광 칼럼위원

이제 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도 을씨년스러워지는 연말이다.

순간을 좀더 지연시켜보려는 것은 사람의 욕심일 뿐 달력 속의 숫자는 지체하려고 하거나 되돌아 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참 답답한 한 해였다. 오죽 했으면 2006년 한국을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선정되었겠는가.

「구름 낀 하늘은 / 솜옷을 껴입고 / 뒤뚱거리는 아가처럼 / 답답하더라」이 시의 한귀절은 졸시 『구름 속에 비치는 하늘』에서 이미 표현한 적이 있다.

잘 말려 부풀린 햇솜처럼 하얀 구름이 듬성듬성 하늘에 점을 찍으면서 그 사이로 파란 하늘이 비치는 날이거나, 아니면 차라리 비라도 시원하게 내려주면 좋으련만 구름만 온 하늘을 빽빽하게 뒤덮고 있는 날은 보는 사람도 답답하다.

이제 달력마져 지쳐버린 2006년 병술년(丙戌年) 개띠해는 마지막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가는 해도 오는 해도 말은 없지만 왜 자꾸 아쉬어지는지 고개를 자꾸 돌리게 된다.

사람의 기억이란 지난간 것은 언제나 아름다움으로 남게 된다. 가난했던 기억도 당시에는 뼈를 깎는 아픔이지만 먼 훗날 지나고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게 된다.

잘못된 것도 아픈 것도 지우고 싶은 기억도 지난 것에 대한 관용은 누구에게나 있다. 마치 아득한 날 꽃잎처럼 보내버린 유년의 종이배를 그리워하는 동심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슴 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낸 병술년은 어떠한가? 미친 듯이 휩쓸고 있는 부동산 바람이나, 세계를 발콱 뒤집어 놓은 북한의 핵실험, 갈수록 심화되는 내편 가르기, 경제적 양극화보다 더 무서운 보수와 진보의 기싸움, 어설프게 벌려만 놓아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개혁이라는 이름의 칼질, 이 무엇하나 다음 해로 넘기고 싶지 않는 일들일 뿐이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더니 우리가 살았던 2006년이 바로 그랬다. 그러나 이 모두를 기억의 곳간 속에 넣어둘 수밖에 없다. 미워도 고와도 우리의 역사였고 우리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꺼림직한 뒷맛이 꽤 오래 가겠지만 있었던 역사를 지울 수는 없지 않는가.

다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은 열린다는 참으로 간단한 이치를 깨달게 된다면, 마냥 닫힌 문쪽으로만 고개를 돌리고 서있을 이유가 없다.

「지금의 나」는 어느 방향에 서 있는가? 이미 찢어 없어진 달력의 낱장을 챙기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정작 챙겨야할 것은 아직 때묻지 아니한 새달력일 것이다.

거기에는 콘도라의 상자 속에서 미쳐 나오지 못한 희망이라는 낱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달력(캘린더)이란 본디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한다.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습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전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길목에 서서 우리는 금전의 대차관계보다는 삶의 대차대조표도 작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뒷걸음쳐 지나간 것에 대한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나를 멍들게 했던 기억하기도 싫은 가슴앓이들을 찾아내어 무슨 보석처럼 줄줄이 다시 엮어내는 일도 계산해야 하지만 잔잔한 감동의 일들,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과 희망까지도 곁들여 만든 대차대조표로 상쇄와 화해의 악수를 나누게 해야 한다.

연말연시의 화려한 불빛보다는 오랜만에 초에 불을 붙이고 조용히 앉아 새천년을 맞이하는 마지막 해의 밤을 보내고 싶다.

그리고 지척에서 숨쉬고 있는 또 하나의 나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 시간만은 지난날의 그리움도 복습하며, 숙제처럼 안겨 있는 미래도 예습하는 자기확인의 묵상에 잠겨 볼 일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깨끗하게 접어 두리라.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