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계룡여심 회원

차가 고장이 났다. 아침에 시동을 거니 요란한 소음을 내더니 도심 한가운데서 시위하듯 서 버렸다. 한 달 전부터 고장의 징조가 보여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현실로 나타났다.

다른 곳에서도 그렇겠지만 이곳엔 차가 없으면 많이 불편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니 거리가 만만치 않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갈아타고 기다리는 것에 대한 마음이 너그럽질 못하다. 습관이 바뀐 탓도 있다.

조금만조금만 하며 미루다 급기야는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아침에 봐달라고 부운 소릴 내는 것을 진중하게 받아들였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시해 놓고도 우선 일을 본 후에 정비소에 가리라 한 것이 잘못이었다.

집을 떠날 때 보다 소리는 덜 났다. 움직임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욕심이 더 생겼다. 며칠 더 타고 쉴 때 정비소에 맡기자. 여기저기 다니며 일을 봤다. 그런데 갑자기 시내 중심가에서 딱 멈추어 서더니 요지부동이다. 올 것이 온 것이다. 삼 개월 전엔 핸드 브레이크가 말썽을 피워 고쳤었다.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그럴까.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아는 지식도 없으니 움직이면 가는 것이려니 하고 끌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멈추어 버렸다. 손과 발로 밀고 당겨도 꿈쩍을 않는다. 그것도 도심의 신호등 앞에서 당한 황당함.

다른 차들의 보챔의 소리, 욕지걸이와 고함, 쏘아보는 눈 어느 하나 부드러운 것이 없다. 난감했다. 성급하게 하려면 더 안 된다. 핸드폰으로 여기저기 SOS를 쳤다. 늘 다니던 정비소 주인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였다.

안전한 장소에 차를 대놓고 보험회사에서 보내오기로 한 견인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등은 식은땀으로 범벅이다. 운전대를 잡은 나보다 옆 사람은 더 당황하고 놀래 얼굴이 노랗다.

십오년 무사고라지만 차의 고장에 대해서는 전무후무다. 십 년 넘게 차를 끌고만 다녔지 그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일을 당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젠 나이를 먹은 탓이다. 육 개월만 있으면 꼭 열 살이 되니 승용차 나이 치고는 적은 나이는 아니지 싶다. 거기다가 장거리를 많이 달린 탓에 다른 차들의 운행거리보다 곱절은 된다.
겉으로 보기엔 아직도 멀쩡한데 속은 엉망이다. 살살 달래어 한 일년은 더 타 보려고 했는데 고치기가 무섭게 다른 곳에 고장이 난다.

차 사고는 목숨하고 연결이 되니 쉽게 생각할 수 없다. 운전은 방심이 금물이다. 아차 하는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난다.

지금 내 몸도 차와 마찬가지다. 다리는 퇴행성 관절로 걷는 것이 불편하다. 어깨는 근육이 뭉쳐 아프고 눈도 침침하다. 그 뿐인가. 여기 저기 아프지 않은 곳보다 아픈 곳이 더 많다.

자고 일어나니 눈두덩이 부었다. 아래 위가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눈에 돌덩이를 얹은 듯이 불편하다. 손이 자꾸 눈으로 간다. 그러다보니 충혈이 되어 남들 보기에 민망하다.

한 겨울에 눈병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급한 대로 집에 있는 안약을 넣었다. 충혈이 가시는 것 같다.

그러나 오후만 되면 다시 붉은 빛으로 변해 토끼 눈이 된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 있는 안약을 넣으며 버텨 보았다. 낫지 않고 점점 심해졌다. 어리석음을 한껏 발휘하고 급기야 병원을 찾았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의사가 물어 왔다. 이십 일은 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대체로 두 주면 낫는데 오래 간다고 갸우뚱한다.

한달 째까지 가는 동안 눈이 점점 나빠졌다. 앞의 사물이 흐릿하니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또다시 다른 병원 문을 노크했다. 후유증이라고 했다. 좀 시일이 걸릴 것이란 말을 덧붙인다.
다리는 절고 눈은 충혈 되어 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한 군데 고쳐 놓으면 다른 곳이 고장이 난다.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다 보니 약 봉지가 쌓였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들이 찾아온 것이다.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조금만 몸을 무리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 다리가 아플 땐 걷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할까. 했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이 또한 제일 소중한 것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몸 어느 한곳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으랴. 차도 마찬가지다. 있을 땐 소중함을 모르다 없으니 발이 묶여 해야 할 일을 못한다. 차가 우리 생활 깊숙이 와 있음이다.

내 발이 되어 멀고 가까운 곳을 마다 않고 다녀준 차. 그가 돌아오면 함부로 대하지 않고 살살 어르고 달래리라.

그리고 깨끗이 닦고 기름칠을 해 소중하게 다루리라, 내 몸처럼. 소중한 것은 없어 봐야 느낄 수 있으니, 우리는 얼마나 우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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