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꽃들이 무수히 있다는 것을 생각 한다. 종점에서 조명을 순수한 모순이 더 생각날 때 부처님 경이 우리를 알 할 것이다.

언제부턴가 삶을 어떻게 회향할까를 생각했다. 새파란 주제에 벌써부터 말년의 일이냐고 탓할지 모르지만, 순간에서 영원을 살려는 것이 생명현상이 아니겠는가. 어떤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현재를 보다 풍성하게 가꾸어주는 수가 있다. 상상의 날개를 주어 구만리 장천을 날게 한다.

할 일 좀 해놓고 나서는 세간적인 탈을 훨훨 벗어버리고 내 식대로 살고 싶다. 어디에도 거리낄 것 없이 홀가분하게 정말 알짜로 살고 싶다.

언젠가 서투른 붓글씨로 <심산>을 써서 머리맡에 붙여 놓았더니 한 벗이 그걸 보고, 왜 하필이면 궁상맞게 이를 잡느냐는 것이었다. 할 일이 없으니 양지 바른 바위에 앉아 이나 잡을 수 밖에 있느냐고 했지만, 그런 경지에서 과연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물론 불가에서는 조그마한 미물이라도 살생을 금하고 있다. 우리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저쪽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끊어지는 일이니까. 우리는 부처님 회향이 끝의 의미는 없다.

하루 부처님의 오시는 날이 아니라 구만리 장천 날게처럼 시시세세 생활에 이어질 것이다.

날마다 새날이듯 날마다 부처님 날이지만 우리들을 위해 인간의 몸으로 나투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봉축하는 것은 우리도 부처님처럼 살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부모님의 손에서 불교를   만나 고민을 해결하고 행복한 마음은 오로지  부처님을 향해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었으면서도 쉽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삼독심을 여전히 휘두르며 살았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지… 하면서….

우리에게도 회향의 의미를 생각하며 생활불교 실천하는 것이 삼독심이 될 것이고 무명에 가리여 자신만 옳다고 방황 하는 우리를 탐진치 삼독심 없이 살아가는 스님들의 뵙고 나면  가슴깊이 반성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처님 법을 전파 하기 위한 새벽에 일어나 수행하시고 하루에 단 한 번씩만 공양 실천 하는 승. 우리는 부처님 법에 식욕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되어 있다는 것은 현실일 것이다.

사찰에 수많은 연등이 하나하나 없어질 때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실천하는 생활불교 자비심 불교를 회향 끝이….

어느 큰스님은 배추벌레용 배추를 따로 심을 정도로 고물고물한 벌레에게도 자비심을 보여주시는 스님들의 모습이 부처님 오시는 회향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중생들이 행복해지기를 기도하시는 스님들. 지구의 허파 노릇을 하는 아마존 밀림. 일체유심조 모든 것을 마음이 만든다 하였듯이 스님들의 수행력이 분명 지구 곳곳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부처님·스님·무명중생 우리들 이심전심이라는 회향의 절감 할 것이다. 우리들 감동이 수많은 사람들의 환희 등불되어 우리 지역 자비를 빛이….

좋은 생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롯이 실천하면서 항상 부처님 오신 날처럼 자비를 생각하고 아름다운 우리 지역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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