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진 변호사 “피고인과 변호인의 깊은 신뢰가 낳은 행복”

▲ 진성진 변호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 무죄판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6년 동안 변호사를 하면서 최고의 행복을 느낀 재판이었다. 피고인과 변호인의 깊은 신뢰가 낳은 합작품이었다”

진성진 변호사(47)는 여러 건의 재판에서 변호를 맡아봤지만 이번 사건처럼 애착이 많이 가고 고생을 많이 한 재판은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진 변호사가 실전 다방 여종업원 강도살인 사건 용의자인 김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4년 10월7일. 김씨가 거제경찰서 유치장에 갇힌 3일 뒤였다.

진 변호사가 거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연지 불과 열흘 만이었다. 그는 “당시 점심무렵 김씨의 부인이 찾아왔는데 약속이 있어 만나지 못하고 오후 5시께 돌아왔는데 그때까지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사연을 듣고 미안한 마음에 곧바로 저녁 7시께 거제경찰서에 유치장에서 피고인을 만난 것이 첫 만남이었다”고 전했다.

“첫 만남에서 ‘용의자 김씨는 나에게 자신의 결백을 밝힐 수 있도록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하게 해 달라’고 졸라 며칠 후 담당 검사에게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요구했는데 이 검사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검사가 내세운 김씨가 범인이라는 가장 중요한 증거는 ‘Y-STR(유전자형)’ 11개가 같다는 것. 진 변호사도 꼼짝없는 증거에 난감했다고 한다.

다시 김씨를 접견한 진 변호사는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나도 판검사를 설득할 수 없다. 사실대로 하나도 숨김없이 나에게 얘기해 달라고 했고, 김씨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 김씨의 말과 표정에서 김씨는 범인이 아님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진 변호사는 검사가 내세운 유력한 증거에 대한 허점들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사건기록을 검토하던 진 변호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된다. 국과수의 감정결과에서 ‘Y염색체는 부계혈족 식별능력은 있지만 개인 식별능력은 없다’는 문구를 발견한다.

생물학, 유전자 감식과 관련된 책 30여권을 구해서 읽었고, 평소 알고 지내던 의사, 교수 등에게 묻고 배우기 시작했다.

한 지인으로부터 검사가 유일한 증거로 내세운 ‘Y-STR(유전자형)’ 분석은 25개를 비교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11개밖에 비교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된 진 변호사는 이 문제를 재판과정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진 변호사는 1심에서 무죄를 확신했다. 물론 피고인 가족들도 큰 기대를 걸고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검찰이 구형한 사형은 아니었지만 무기징역. 김씨는 물론 그의 가족, 진 변호사 모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진 변호사는 김씨와 그 가족들이 항소심에서는 자신을 변호사로 선임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김씨가 “진 변호사의 1심 마지막 변론을 들을 때 온몸에 전율이 흘러내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나도 빼지 않고 변론했다”면서 진 변호사를 간절히 원했고, 진 변호사는 다시 김씨의 변호를 맡게 된다.

항소심에서 진 변호사는 1심에서 밝힌 유죄의 이유(11가지)를 하나하나씩 반박해 나갔다.
그의 변론은 먹혀들었고, 결국 2심(2005년 7월27일)에서 무죄를 이끌어냈다. 김씨가 구속된 지 꼭 2백97일만이었다.

진 변호사는 “부인이 대성통곡을 하며 전화가 왔었다. 한참을 울고 나더니 ‘변호사님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해왔다”면서 “그 순간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변호사로서의 더없는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검찰은 곧바로 상고했고, 대법원이 지난 7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김씨의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진 변호사는 “2심에서의 무죄선고 때보다는 감동이 덜하지만 대법원의 무죄확정으로 큰 짐을 덜게 됐다”면서 “내 생애 이같은 재판을 다시 하기 어려울 것이고,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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