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선 계룡여심 회원

구불구불한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아까부터 목이 탔다. 옷의 소매를 둘둘 말아 올리고, 창문을 열어 찬 공기를 불러들인다.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려 보아도 오르막 경사는 끝날 기미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다. 전에 와 본 기억도 없는 길, 작정하고 들어선 길은 더더욱 아니다. 서쪽하늘의 노을 탓이라고, 그것에 잠시 마음을 뺏겼노라고, 진정 그랬노라면 스스로도 웃을 일이다.

어쩌면 ‘나도 바람을 타는 모양이야’ 며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날리던 그의 말에서 바람의 실체를 가늠해 보고 싶음인지도 모른다. 차는 이미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오색 물감을 들어부은 듯 가을 산은 노을과 함께 타고 있었다. 무리지어 피어 있는 억새들이 수줍은 듯 하얀 몸을 간간히 흔들고, 나무들은 제 빛깔에 맞는 옷으로 단장하느라 시끌벅적하다. 더러 단장이 끝난 잎들은 떨어지기도 하고, 바람을 타고 허공 속으로 나부끼기도 한다.
발아래 떨어진 낙엽을 줍는다. 멀리서 볼 때는 똑같아 보였는데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니 제각각이다. 생김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이파리들의 향연은 끝이 없다.

이와는 상관없는 듯 미동도 없는 것이 있다. 소나무이다. 모두들 단장을 하는 동안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은 의연하다 못해 오만스럽기까지 하다.

오로지 하나의 색을 고집하며 버티고 서 있다. 제 혼자 잘난 양 주변의 북적거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변화를 모르는 그는 사시사철 푸른 옷이 지겹지 않은 모양이다. 꺾일 줄도 굽힐 줄도 모른다. 참으로 무서운 기개가 아닐 수 없다.

문득 그와 닮은 이가 생각나서 괜스레 단단한 껍질을 손톱으로 꾹꾹 눌러 보기도 하고, 발로 툭툭 차보기도 한다.

무리 속에 섞일 줄 모르는 그는 이성을 특히 중히 여겼다. 감성 따위는 그의 앞에서는 싸구려 감정쯤으로 치부되어 거부당하기 일쑤였고, 판단 또한 냉철하여 언제나 냉랭한 바람이 일었다.

고독을 최대의 적으로 삼았으니 사람 냄새를 맡기란 힘든 일이었다. 애당초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그런 그를 나는 자주 비난했다. 비난조차 편하게 받아 넘기는 그가 참으로 얄미웠으나, 그의 논리 정연한 한마디 한마디를 받아 넘길 재간이 내겐 없었다. 그랬던 그가 일전에 바람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근원적인 삶의 물음 앞에서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아주 짧게 지나갔다.

지평선 너머 노을은 수만 수천 갈래의 빛으로 떨어져 어촌의 작은 바다를 온통 은비늘로 덮어 놓고 있다.

차에서 내린 것은 기실 떨어지는 노을에 빨려든 것만은 아니었다. 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 끝자락에 노송 한 그루가 떨고 있었다. 등이 휘고, 듬성듬성한 잎은 반쯤 황토 빛으로 변해 있었다. 죽어가고 있는 노송을 보며 문득 사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잎을 털어 내어 겨울을 나고 이듬해 다시 소생하는 순환을 거치지만, 소나무는 한번 죽으면 그 자리에서 영영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토록 제 빛을 지키려했던 소나무 역시 순환의 원리를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색시, 새~액시.”

텃밭에서 무를 뽑으며 아까부터 내 행동을 주시하던 아낙이 손을 들고 오라는 시늉을 한다.
발걸음은 반사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볏짚이 깔린 밭에 주저앉아 무 한 조각을 베어 문다. 아낙이 물끄러미 나를 본다. 갈증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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