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진 채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사람들이 꿈을 쫓으며 살지 못하도록 뒷덜미를 잡는 가장 큰 방해 요인이 바로 이것이다. 스스로 부와 풍족함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절대로 붙잡지 못한다.

그들은 하는 일 없이 넉넉한 사람들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는다. 그리고 인생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정당화할 변명거리를 꾸며대기 바쁘다.

풍족한 마음이 수많은 보통 사람들과 소수의 욕심을 구별하는 경계선임을 깨닫자. 지금부터라도 풍족한 마음으로 행복한 사람 들 사이에 우리의 자리를 만들자. 우리는 그럴 만한 자격의 불성있다. 불성성이 무엇인가?

곧 나와 당신의 몸 속에 본래 지니고 있는 지혜, 맑고 밝은 지혜 광명이다. 여래와 다를 바 없는 원만 구족한 지혜 광명이다. 그래서 불성이라고 부른다. '부처님의 본성, 부처님의 생명력', 이런 뜻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지금, '이 세상의 모든 생령들이 모두 불성을 지니고 있다. 부처의 지혜 광명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선포한다.

중생은 비단 인간만을 가르키는 것 아니다. 위로 하늘나라 백성들로부터 아래로 지옥에서 고통받는 무리들까지, 생명있는 것은 실로 중생 아님이 없다.

이제 우리는 가장 존귀한 생명의 주인으로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났다. 나와 당신과, 신과 사람과, 사슴과 진달래가 저마다 존귀한 생명의 주인으로서 다시 태어났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 신의 영광을 위하여 다만 필요한 도구였었지만, 이제 우리는 스스로 저마다 존귀한 생명의 주인이 된 것이다.

출생은 같지만 죽음의 순서가 필요 없다. 우리의 자손심이 4년이라도 아름다운 소리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를 믿음과 신중한 마음을 결정의 시간이다.

부지런한 노력으로 괴로움 없애고 지혜로써 피안에 도착하리라. 믿음과 실천이 있는 사람은 거룩한 분의 칭찬을 받고 해탈을 즐겨하는 사람은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느니라.

사위성의 동남쪽에 깊고 넓은 강이 있었는데, 그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

어느날, 어떤 사람이 강의 남쪽으로부터 물 위를 걸어와 부처님을 뵙고 예배를 올렸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옛날부터 여기 살았으나 물 위를 걸어서 강을 건너는 사람을 보지 못했소. 그대는 어떤 도술이 있기에 물 위를 걸을 수 있소?" 그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강 남쪽에 사는 어리석고 고지식한 사람이오. 부처님께서 여기에서 법을 설 하신다는 말을 듣고 오려 했으나 강 때문에 오지 못했소. 그래서 강가의 사람들에게 강이 얼마나 깊으냐고 물었더니 발목정도 밖에 안된다기에 그 말을 믿고 그대 로 건넛을 뿐, 내게 큰 도술이 있는 것은 아니오."

믿음이 없는 불법은 마치 가마솥에 모래를 넣고 쩌서 밥이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믿음의 바탕이 바로 설 때, 비로소 납득하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이 나온다. 이제 우리의 자존심은 우리의 마음으로 나부터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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