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원 칼럼위원

▲윤성원 거제불교 거사림 교양대학 2기 학생회장
‘지도론’에서도 날 일(日)에 좋은 날, 나쁜 날이 없지만, 세간의 인연따라서 행하여 간다고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불교가 중생의 복락을 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선이 된다면, 이 이치를 터득하여 더욱 무고안온의 경지인 해탈 열반의 보리를 이뤄나가는 과정으로 전환되어 가기 때문에 단순히 불교가 현세복락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치를 모르면 본질을 모르고 본질에 어두우면 형상에만 국한하여 기준을 두려고 하기 때문에 희론에만 열중하려는 어리석음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치적인 표현방식에 따라 무엇을 어떻게 완성 성취해 가느냐 하는 것은 곧 근기따라 각기 각양각색의 방편으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집을 짓는다 할 때 집짓는 방식에 있어 설계도면부터 건축까지의 과정은 초가집이든 고층 건물이든 그 방식은 다를 바가 없고, 다만 재료가 어떠한가에 따라서 사물의 형태가 다르게 완성되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방식을 터득해냈다면 이제는 집을 짓는 데에 여러 가지 방법 등을 알아 원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동지(冬至)라 하는 민속적 풍속도 어디까지나 재앙을 멀리하고 복(福)을 불러오고자 하는 중생의 소박한 마음의 평온을 희구하는 바램이기에, 여기에 어떤 인간 본연의 욕심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1년에 한 번 봉사 한다고 매체를 통해 상을 나타내는 사람이나 평생을 봉사와 희생으로 상도 마음도 나타내지않는 사람도 동지의 의미를 알 것입니다.

동지의 밤부터  낮의 시간은 변화되는 시점에 포옹과 감사 부족한 우리는 춥고 어두운 곳을 한번 생각해 할 시간입니다.

동지(冬至)란 1년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입니다. 동짓날은 ‘다음 해가 되는 날’이라는 뜻으로 아세(亞歲)라고도 합니다. 하지(夏至)로부터 짧아지던 낮시간이 동지(冬至)에 이르러 조금씩 길어지는데, 이것을 고대 사람들은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부활하는 것으로 보아 생명과 광명의 주인인 태양신에 대한 축제가 거행되기도 하며, 또 천문학적으로 이 날을 신년의 원단으로 치는 풍습도 행하여져 왔습니다.

동지는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음에 있어 잡귀와 재앙을 멀리하고 복을 구하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좌절속에 있었다면 용기를 얻고, 시련속에 있었다면 희망을 찾아 빛나는 태양처럼 굳은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고자 하는 발원의 날인 것입니다.

붉은 팥죽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박한 마음보다는 재앙과 재난의 어두운 그림자를 법등(法燈)의 불빛으로 밝혀가도록 말입니다.

재앙과 재난 등은 곧 어둠을 뜻합니다. 반면에 붉은 팥은 밝음을 뜻합니다. 세계경제 위기시대에 동지(冬至)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이치적인 생활관에서 만물과 함께 서로 협력하며 평등적 관계로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로운 힘을 충전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거리에도 수주라는 현수막이 무엇을 의하는지 꼭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두운 시간보다 밟은시간 더 많이 오고 있다는 冬至을 생각해 봅니다.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