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위숙 계룡수필 회원

가끔 고현시내에 나가곤 한다. 반찬거리를 사러 재래시장에 들르고, 생필품이 많은 큰 ‘마트’에도 들른다.

그리고 은행이며 관공서에 들러 밀린 일들을 한꺼번에 보기도 하고, 혼자 계시는 어머님을 찾아뵙는다.

고현은 내가 사는 곳에서 승용차로 삼십여 분 남짓, 시내버스로는 한 시간 거리다. 그다지 먼 곳이 아닌데도 새벽에 가게 일을 마치고 가는 날이면 고단하다. 볼 일을 보고 친구 집에 모처럼 들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날이 어둑해진다.

밤눈이 어둡기도 하거니와 어제처럼 안개를 만나는 날은 밤길에 운전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하지만 오가는 길에 먼 산의 단풍을 만나는 기쁨은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다.

언제 가더라도 계절의 변화를 실감케 해주는 구천댐 길은 내게 달콤한 휴식처이기도 하다.
늘 그러하듯이 가을이면 나는 쩔쩔맨다. 가을꽃들이 피고 지는 순간에는 온몸이 무너지듯이 기력을 잃어 어쩔 줄을 모른다.

멀리까지 찾아가서 형형색색의 나무그늘 아래 앉으면 한나절이 무상하게 흔적도 없이 지나간다. 삶에 대한 열정과 무상을 동시에 열어 흔들어 보이며 가을이 오고 간다. 어제는 비온 뒤끝에다가 달마저 없는 캄캄함이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한겨울인 양 차가운 바람이 길섶의 풀들을 죄다 쓸어 눕혔다. 먼 바다에는 모로스 부호처럼 섬마을이 불을 밝히고 있다.  별들이 무리지어 뜬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들은 일제히 바다로부터 떠올라 어쩌면 바다 속은 텅 비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씨앗 같은 별들이다. 희망이라는 씨앗이 하늘에 뿌려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그 씨앗을 품어 보리라. 데친 시래기 같은 몸을 하고 겨우 집으로 가는 늦은 저녁이면 삶은 왜 그렇게 서글프고 초라한지 아무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그때마다 마중 나와 준 것은 가로등 밑의 환한 나무들. 처음부터 나무들은 알고 있었다. 철저하게 벌거벗었던 가난한 제 몸 속에 강물처럼 푸른 수액이 흐르다 때가 되면 잎은 붉은 빛으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무들은 결코 지치는 법이 없다. 이렇게 나무들이 활활 타오르는 가을밤이면 살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도둑고양이처럼 가을빛 한줌 물어 가고 싶다.

자동차 불빛에 날아드는 날벌레들이 차라리 늦은 밤길을 든든하게 만들어 주는 밤.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나무 냄새 풀냄새가 좋았던 밤. 그러나 한치 앞을 볼 수 없도록 안개가 깔린 밤이면, 무서움을 떨쳐내려 큰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사노라면’을 한 소절 부르고나니 내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난다. 울컥 치밀고 올라오는 슬픔에 눈물이 묻어난다.  그러면 더 큰 소리로 ‘라구요’를 부르다가, 정말 내 어머니의 십팔번 ‘여자의 일생’을 부르며 서럽게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묻고 만다.

한참 만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니 아직도 안개는 골 안에 가득하다. 짙게 깔린 안개는 좀처럼 물러서질 않는다. 그러나 가야 한다. 저 속을 헤치고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

내 집이, 나의 포근한 집이 저만치 안개를 헤집고 나를 맞는다. 이쯤 오면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두 손으로 눈두덩을 쓱쓱 문지르고, 다시 예의 씩씩한 아줌마로 돌아간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저 안개에 싸인 계곡도 환해지겠지. 날이 새면 해가 다시 뜨지 않더냐. 그래,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반드시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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