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평원 거제수필문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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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총회에 보고할 결산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결산이 정확치 못하면 많은 일을 해놓고도 오해와 불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쓰는 일 중의 하나이다. 사무국장이 준비해온 자료에다 누락된 항목 몇 가지를 추가해서 써넣고 전자계산기로 검산을 해본다. 그런데 계산할 때마다 답이 다르게 나와서 주판珠板으로 계산을 해볼까 하여 찾아보니 없다.

결산이 틀리는 것 같다고 전화를 걸었더니 ‘한 번 더 계산을 해 보십시오’라고 한다. 기분이 좋지 못한 목소리다.

사무국장이 다 알아서 할 일인데, 괜히 전화로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 마음에 상처를 주었구나 하고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며칠 뒤에 생각해보니 어린 손자 놈이 계산기를 가지고 놀면서 고장을 냈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 일로 새 계산기를 구입해서 셈을 해보니 답이 맞게 나왔다.

미안해서 전화를 할 수가 없어서 ‘새로 산 계산기로 해보니 잘 맞네요!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핸드폰에 문자를 보냈더니 ‘계산이 맞다니 다행이네요’라고 답글이 왔다.

사람은 누구나 기술記述, 구술口述, 산술算術 등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요즘 들어 그 지능이 점점 퇴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글감이 떠올라도 쉽게 잊어버리고 대화를 할 때도 간혹 할 말을 잊어버려 난감한 때가 있는가 하면, 간단한 셈도 계산기에 의존하고 있으니 혹시 치매의 초기 증세가 아닌가 생각해 볼 때도 있다.

수학시간에 어려운 문제를 풀 때에 몇 번의 오답 뒤에 정답이 나오면 얼마나 좋았던지 모른다. 그때는 공식과 순발력으로 정답을 구하므로 머리 좋은 학생이 항상 남 먼저 정답을 맞혔지만 오늘날은 인간의 지능을 대신해주는 전자기술이 가히 놀랄 만큼 발달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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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가 가감승제加減乘除 4연 법칙에 의하여 셈하는 것처럼 정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다. 공식도 없고 정답도 없는 것이 사람 간의 인정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본다.

부모 자식, 부부 또는 이웃 간에 일생을 살아오면서 주고받은 사랑과 정의 깊이나 무게는 얼마인지, 얼마로 보답해야 되는지 숫자로 계산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며칠 전 아침마당 노래자랑 프로에서 간경화를 앓고 있던 아버지에게 남매가 같이 간을 떼어 이식시켜준 가족이 나와서 행복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회자가 아가씨에게 ‘여자가 몸에 흉터가 생기는 수술을 결심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간 절제 수술을 결심하게 되었느냐고’ 물으니까, 나의 몸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身體髮膚父母受持─孔子〕 부모님께서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대답한다.

그 장면을 보면서 윤리도덕이 사라진 메마른 세상이라고 해도 효자효녀가 있구나 하며 진한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가족팀에 ARS 전화로 한 표를 던졌다. 전광판의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부자父子간에 무한대의 사랑은 계산기로 셈하는 산술적 가치가 아닌 무엇으로도 계산을 할 수 없는 오직 혈연의 관계라고 생각하는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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