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주 거제수필문학 회원

내 나이 예순을 넘어, 옛날 같으면 긴 담뱃대를 물고 덧창문 열고 덕석에 널은 나락에 날아드는 새나 쫓아 보내고 있을 나이. 그래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연구하는 게 지금 내 자신의 모습이다.

오년 전, 초등학교 동창생인 고분자 물리학박사 J를 떠나보낼 때 왜 그리도 서럽던지. 아들 결혼을 보고 임종하려고 했는지, 그렇게 맞추려고 가족들이 노력했는지, 아들 혼사 후 오래지 않아 그 친구는 갔다.

그의 영정 앞에 한참을 울고 나니 맺혔던 가슴이 조금 후련했다. 옆에 있던 이형이 나를 보고 "동주의 다른 면을 보는 구나" 했다. 이제 하나 둘씩 곁을 떠나가는 친구가 늘어난다. 금년만 해도 부산에서 나와 같이 토목을 전공하고 자기 동네 면장을 정년으로 공직을 마감한 친구 L씨. 그는 너무나 시골적인 사내였다. 여름이면 복숭아를 매년 보내오곤 했는데, 금년 초봄 어느 날 '해당화 뿌리가 필요한데, 거제도는 바닷가이니 구할 수 없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사실 나는 해당화를 잘 몰라 야생화 전문인 O선생에게 문의하니 외포 어디 가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 어떤 연락이나 조치도 못하고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너무 죄스럽고 미안해서 가볼 수가 없었다. 해당화 뿌리를 어딘들 못 구했을까마는 약을 구해주지 못한 죄스러움이 내내 가슴에 맺힌다.

'내가 설혹 당장에 해당화 뿌리를 보냈다 하더라도 운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라고 나 스스로를 달래본다.

외항선 기관장을 한 친구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안전사고였다. 부두에서 이만 오천톤급 배를 접안시키는 작업을 하다가 그 큰 배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이끌어주던 봉고차와 함께 바다에 빠져 고혼이 된 친구 K씨.

시월 이십오일에 초등학교 동기회를 거제 여차에서 할 것이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일찍 죽은 J 그 친구가 왜 자꾸 생각나는지. 그가 떠난 빈자리는 오랫동안 우리들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다음 달에는 고등학교 동기회다. 그러면 또 일찍 간 친구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를 것이다. 조방 뒷골목의 양아치와 박치기하던 일. 10원에 10개 주는 풀빵을 쥐고 도망치던 일, 사창가를 통과할 때 책가방 뺏기던 일, 굽이굽이 너무 많은 추억들이 떠오른다.

또 한 친구 임오생 동갑내기 김군은 한국의 마추픽추같은 의령군 봉수면 천락리 국사봉 능선에서 요양중이나, 길가 민들레처럼 억척 같은 인생을 살아온 친구라서 쾌유할 것으로 본다. 그는 암이란 보통사람 부스럼정도로 생각하고 지내온 사람이다. 지난번 만나보니 얼굴이 많이 좋아졌고 건강이 회복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멀리 창녕 화왕산이 산수화처럼 보이고 저녁이면 창녕읍 불빛이 너무 멀어 이국의 정서를 자아내는 다섯 가구 일곱 명이 사는 곳이다.

나이를 먹다보니 사건이란 것이 친구들의 죽음이요, 좋은 일이란 게  손자 보기다. 투병중인 친구는 하루속히 쾌차하기 바라며, 멀리서 온 친구들은 훗날 다시 만날 때까지 편안히 잘 지내리라 믿으며 세월의 한 자락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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