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거제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집에서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고, 한번쯤 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하였지만, 실천으로 옮기는데 4년 가까이나 걸렸다.

가까운 초등학교 운영위원회에서 교육이 도서관 지하 대강당에서 있었는데, 참석하던 날 주차장이 붐빌 것 같아 걸어서 도착하였고, ‘아, 이렇게 가까운데 내가 게을러 도서관에 못 온단 말인가. 내일모레 반드시 들르리라.’ 마음먹었다.

실행에 옮긴 날은 태양이 뜨거웠던 날의 오후였다. 걷기엔 햇살이 약간 따가웠지만,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건물의 야외 휴게소에서는 무슨 시험인가를 준비하는 것 같은 젊은이가 영어책을 곁에 놓고 계룡산을 향하여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열정적으로 대사라도 외듯이 영어를 외치고 있었고, 두엇은 책을 벤치에 놓고 쉬엄쉬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니, 데스크의 여직원이 ‘공부하러 오셨는지, 열람실로 가실건지’ 친절하게 물어준다. 열람실 안은 평일이어서 예상했던 대로 한산한 편이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열람실의 책상에 앉아 느긋이 읽기 시작했다.

바깥은 햇볕이 쨍했으나 실내는 시원했고, 내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차분해 지기 시작했다. 마치 명상에 잠긴 듯하다. 읽는 글은 그리 마음속에 팍팍 들어와 박히진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무엇에 홀린 듯 상쾌해져 갔다.

사실 집에서, 또 사무실에선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설혹 잡더라도 건성으로 몇 장 넘기다가 다시 꽃아 두게 마련이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첫날의 체험이 워낙 좋아서 자주 들르리라 마음을 굳게 먹고 읽던 책을 서가에 꽂아놓고 돌아왔다.

두 번째로 들렀던 날은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토요일 오후였다. 이 빗속에 나는 도서관이 좀 한가하리라 생각하면서 주차를 하고 현관으로 입실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많이 붐비고 있었다. 여학생, 남학생들과 내 또래의 중년도 서넛 보였다.

며칠 전 읽던 책을 다시 꺼내 열람실의 책상을 둘러보았으나 자리가 없다. 할 수 없이 구석진 서가 사이의 바닥에 퍼질러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묘하게 좋기만 하다. 오히려 머리에 글이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여중생들이 과자 따위를 입 안에 오물거리며 낮은 소리를 주고받는 소음도 별로 나쁘진 않았다.

진동으로 바꿔 놓은 휴대폰으로 전화가 와서, 읽던 책을 가까운 서가의 선반에 임시로 표시나게 두고 바깥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니 책이 감쪽같이 없다. ‘내가 서가의 위치를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인가?’하고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원래에 꽂혀 있던 제 위치에서 찾았다. 그 새 직원들이 돌며 서가를 정리했던 것이다.

나올 때에는 읽다 남은 책을 대출하려 절차를 밟았는데 의외로 쉽고 간단했다. 바코드가 붙어 있는 플라스틱 카드에 내 이름이 적혀 즉석에서 발급되고 즉석에서 대출되었다.

내가 내는 많지 않은 세금의 혜택을 오늘에야 보는 것 같아 뿌듯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대출한 지 2주일이 다 되도록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책은 책상 위에 던져져 있다. 내일, 모레면 대출기한이 끝날 것이다. 아무래도 책을 다시 도서관에서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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