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혜 계룡수필 회원

호영이는 지난 여름 이곳으로 이사했습니다. 이곳은 동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닷가인데 가끔 낚시꾼 아저씨들이 찾아옵니다.

아버지와 단 둘이 살다가 낚시꾼들이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되자 낚시꾼 아저씨들마저 뜸해져서 한층 더 외롭습니다. 아버지마저 일터로 나가고 나면 늘 호영이 혼자입니다.

일년 전만 해도 엄마와 동생까지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둘씩 갈라져서 살고 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어른들의 세계라 알지 못하지만 잦은 싸움 끝에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동생이 보고 싶을 때마다 호영이는 바다를 향해 돌팔매질을 합니다. 그러나 그 돌은 아무 것도 맞추지 못하고 바다로 빠지고 맙니다.

저 멀리 보이는 바위섬에라도 부딪쳐서 소리라도 났으면 좋으련만, 턱도 없이 모자라 도중에 떨어지고 맙니다.

그런 호영이에게 아버지는 두 마리의 흰 오리를 사 주셨습니다. 친구도 없이 바닷가에서 돌팔매질이나 하며 노는 것이 안쓰러웠던 모양입니다. 오리는 호영이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오리 생각만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오리를 보러가는 것입니다. 잘 있는지 확인을 해야만 밥을 먹습니다. 아침마다 아버지의 호통소리로 겨우 눈을 뜨던 호영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깨우지 않아도 잘 일어납니다.

오리가 바다로 나갈 때는 호영이도 같이 갑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뒤뚱뒤뚱 걸어가는 오리 옆에는 언제나 호영이가 있습니다. 오리는 바다 저만치 가서 멀어지면 호영이는 오리를 부릅니다.

꽥꽥, 꽥꽥, 호영이가 아버지를 따라 나갔다가 집에 와 보니, 낯선 오리 두 마리가 흰 오리와 어울려 놀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목에 청색 띠를 두르고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갈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오랜 친구 사이처럼 함께 물속에서 주둥이를 넣고 마주보기도 하고 주위를 빙빙 돌기도 합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오리들이 같이 집으로 들어오며 노래를 부릅니다. 꽥꽥, 꽥꽥, 두 마리가 아닌 네 마리가 힘차게 소리를 지르며 함께 오고 있습니다. 물론 호영이가 좋아할 것이라고 흰 오리가 설득한 모양입니다. 

오리들을 보던 호영이가 느닷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일년 전에 헤어진 엄마와 동생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섭니다.

화목했었는데 많은 것을 잃은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엄마와 동생, 친한 친구 민지와 영식이, 그리고 이웃집 아줌마와 아저씨가 생각납니다.

이곳으로 이사와 매일 매일 바다를 향해 돌을 던지며 보고 싶은 이름들을 불렀습니다. 이젠 갈 수도 볼 수도 없음을 잘 알기에 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리들과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느닷없이 많은 오리 떼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청색과 갈색의 오리들이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였습니다. 오리 떼만이 아니었습니다.

온갖 옷을 차려입은 철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들은 것입니다.그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호영이는 이상하게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나 저 새떼들을 따라 흰 오리까지 가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오리를 집에 가두자고 졸랐습니다. 바다에 내보내지 말고 우리에 가두어 먹이를 주며 기르자고 졸랐습니다. 한참을 듣고만 있던 아버지가 호영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도 살던 동네와 친구가 보고 싶지?”

호영이는 여기서 살다가 가면 내년에는 또 올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안심이 되었습니다.

내다본 바다에는 새떼들이 장관을 이루며 놀고 있습니다. 조용하던 바다가 철새들로 분주합니다.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고독도 사라졌습니다.

아직까지 네 마리의 오리는 썰물을 따라 나갔다가는 밀물을 따라 돌아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제 집을 찾아옵니다.

바닷가에 서 있는 호영에겐 엄마와 동생의 생각이 밀려왔다가는 사라지고, 또 밀려옵니다.
호영이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합니다. 내년에는 저 철새들처럼 엄마와 동생이 찾아와 달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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