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타 스님/칼럼위원

▲ 법타 스님 / 거제불교 거사림 지도법사, 기원정사 주지
50% 50% 생각이 같다면 판단은 오기와 타협이 일어나는데 언 사람은 코가 깨지는 일을 당하곤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 때 인력(人力)으로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돌리고 맙니다.

이것을 역학에서는 삼재(三災)라고 얼버무리며 재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받아들이라는 것은 인정하라는 뜻을 의미합니다. 또 순종하라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괜히 고집을 피워 끝까지 가다보면 몸도 마음도 재물도 놓치고 맙니다.

어떤 가게가 있는데 하는 사람마다 망하여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서 나옵니다. 이를 두고 기운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연이 맞아야 한다지만 연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본인 이외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를 때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찾게 됩니다. 그러나 내리막길이 나타날 때는 주위가 대단히 시끄럽습니다. 즉 돈 나가는 소리입니다.

돈은 돈대로 나가고 사람은 사람대로 시달리게 되는 것이 눈앞에 나타날 때는 접어야 합니다. 쓰레기통에 종이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음식 찌꺼기가 나올 때도 있고 개똥도 나올 때가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 많이 담겨져 있으면 더러운 것만 나오게 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이때는 숨만 쉬고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꼬이고 틀어지고 심지어 벽에 걸어둔 마늘까지 썩어 없어지는 운명의 때가 오면 기가 막히는 일들이 곳곳에서 쏟아 나게 마련입니다. 역학이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이며 신이 있다면 무엇을 할 것입니까? 아무 소용이 없을 때입니다. 소낙비는 일단 피하고 보란 듯이 같은 이치가 됩니다.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방법이 없을 때에는 무(無)가 제일입니다. 나를 없애는 것입니다. 어떻게 없앨 수가 있습니까? 죽지 않는 다음에는 없앨 수가 없습니다. 무엇을 없애야 합니까? 복에 없는 욕심을 없애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증권에 빠지면 본전 생각 하듯이 그런 마음이 생겨 잃어버린 재산을 찾으려는 욕구가 아주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1,000만원이지만 나중에는 1억을 잃고 만다는 것입니다. 무겁지 않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되는데 그 길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수행도 고차원이 있습니다. 고차원은 자신을 찾는 수행입니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입니다.그런 수행을 평소에 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수행을 하다보면 나 자신도 모르게 길을 잃고 해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가는 수행, 맹목적인 수행으로서는 순간의 포착이 어렵습니다.

자신을 찾는 수행은 평소 자신을 잘 억제할 수 있는 제어장치가 붙어 있게 마련입니다.(시사붇다)브레이크를 밟을 때 밟아야 합니다. 시도 때도 없이 밟으면 울렁증이 나타나듯이 생명 또한 그렇습니다. 요행을 바라는 수행은 금물입니다.

자신의 숙업을 직시할 수 있는 수행이 아니면 모두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일념삼천의 법문은 숙명을 가르치는 법문입니다. 나의 숙업을 알아야 부처라고 했습니다. 나의 숙업은 부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다만 공덕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사전에 예방하는 것입니다. 조상이 복을 줄 리도 없고 신이 복을 줄 리도 없습니다.

어차피 규명된 복을 어떻게 바꿀 수가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스님이 무엇을 해줄 것이란 생각은 가지면 안 됩니다.

오직 악업과 나와의 피나는 투쟁 속에서 업을 이겨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숙명에 울기 전에 숙업을 알아야 하는 것이 수행의 가장 올바른 방법입니다.지금 갖은 방법이 있습니다만 이런 것을 방편으로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유 없는 반항에 불과할 것입니다. 어떠한 괴로움도 영원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이치는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나타납니다. 숙업도 그런 것입니다. 오르막길을 대비해서 내려갈 때 힘을 비축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곧 올바른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수행 말입니다.(시사붇다)

좋은 말씀은 숨겨있는 것보다 알리고 싶은 부처님의 법으로 생각하고 내용을 올립니다. 세계에 한분의 대통령은 잘못이라 판단하면 국민에게 잘못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행동이 우리에게 오기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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