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복 원장/자향한의원

7월31일, 동의보감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에서 1992년부터 기록유산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로 지금까지 83개국 193건의 기록물이 등재되었는데, 동·서양을 통틀어 의서(醫書)가 등재된 것은 처음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7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광해군 5년(1613년)에 처음 간행되는데, 선조의 왕명에 의해 편찬이 시작되었으나 정유재란 등을 겪으면서 편찬 또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처음에는 당대의 최고 학자들과 허준(許浚)을 위시한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과 같은 어의들에게 집필을 명하지만 편찬기간이 길어지고 연이은 전쟁으로 나라가 피폐해지면서 결국 허준 혼자의 위대한 노력에 의해 그 완성을 보게 된다.

편찬 과정에 내용은 이정구(李廷龜)가 지은 동의보감 서(序)에 과정이 잘 드러나 있다.

『동의보감』은 임진왜란 후 민생이 피폐해지고 질병이 유행하던 시기에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의서(동의(東醫)는 중국의 동쪽인 우리나라의 의학이란 뜻)’가 필요한 시대상황과 잘 맞아 떨어진다.

이번 등재에 대해 『동의보감』이 가지는 가치는 ‘동아시아에 전해오던 16세기이전 의학서적 1000여권을 총망라한 의학백과사전으로 세계최초의 공중보건 안내서’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서지학적으로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세계의 기록유산인만큼 세계인이 경탄해 마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기뻐할 것이고 동의보감을 누구보다 많이 접하는 한의사로서 감회는 남다르다.

필자의 전공이 의사학(醫史學)이다보니 『동의보감』에 대해 사족을 달아본다. 『동의보감』은 단순히 전래되어 오던 기존 지식들을 나열한 요즘의 백과사전으로 오인해선 안된다.

기존에 없던 독특한 편제를 가지고 중국의 의서들을 총망라했지만 인용과 편집 속에서 허준의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책이다.

술이부작(述而不作 : 기존의 것들을 잘 전해서 기술하지, 함부로 지어내지 않는다는 뜻)의 전통에 따라 인용처를 밝히고 인용의 형식으로 전체적인 구성을 하였지만 교묘한 글자의 변경과 생략, 전후 인용의 배치를 통해 큰 맥락을 가진 하나의 완성체를 만들어냈으니 그 공력이 얼마나 들어간 것일까.

필자도 『동의보감』에 관련된 작업에 참여해봐서 알지만, 전체 동의보감의 5분의 1의 원문을 직접 찾고 생략된 글자와 원문을 변경한 표현 등을 찾아가면서 번역을 하는데 연인원 2600여명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주석 3000개를 달았다(동의과학연구소 간(刊) 『역주동의보감』).

물론 이 작업을 전업으로는 하지 않고 여러명이 모여 토론하면서 진행을 했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 면은 있지만, 개인이 1000권에 이르는 책들을 자유자재로 편재를 만들어 큰 흐름을 가지고 배열한 공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은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지상에서 이번 등재에 대해 중국의 견제가 심했다고 한다. 『동의보감』을 폄하하길, 중국의 기존의서를 베껴서 만든 책이라고 한다.

외견상 인용을 해서 그런 주장을 한다지만 이는 『동의보감』의 내부 논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최근 한의계 내부에서도 『동의보감』을 천착하는 한의사들이 늘고 있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보다 내부논리를 공부하려는 풍조가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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