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출신 독립운동가인 양명(梁明) 선생이 제62주년 광복절인 지난 8월15일 70여년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거제신문은 1920-1930년대 양명 선생이 투고한 글 가운데 수집한 개벽 3호(1925년)에 실린 ‘근세 구미문화의 근본태도’란 글로 재조명 해본다.

새는 날개와 털이 있고 짐승은 날개가 없지만 털이 있고 물고기는 물에 살고 금수는 육지에 산다. 하지만 육지에서도 살고 물에서도 사는 양서류가 있다. 까마귀는 검고 해오라기는 하얗지만 동물 중에는 때에 따라서 변하는 자가 있고 고등 동물은 모두가 양성이 분리돼 그 교합으로 종의 번식이 성취 되지만 진화가 미급한 동물에 이르면 단세포의 분화작용으로 종의 번식을 이룰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성별을 알기가 심히 곤란한 것이 있다. 사회의 진화는 인류의 이해가 상반되는 양대 계급에 분리시키고 말았다. 일면에 착취계급이요. 압박계급인 유산자가 있고 반면에 피 착취계급이요 피압박 계급인 무산대중이 있다.

따라서 생활의 반영이요, 인류의 상품인 인류의 의식 인류의 사상도 필연적으로 양대분이 되지 아니할 수없다. 일면에 착취계급을 흉내 내고 현 제도를 시인하는 유상계급적사상, 유산계급적의식이 있고 반면에 그와 정반대로 현제도를 부인하고 계급적투쟁을 고양하는 무산계급적사상,무상계급적의식이 있다.

사회적 계급적 대립이 일시적 돌변이나 국부적 그것이 아니오 사회진화의 필연적계급이오, 인류사상의 필연적현상인 이상, 감정적 동물인 사람으로 그에 대하여 모 일파에 가까운 중립은 있을수 있으려니와 진정한 의미의 중립적 태도는 가질 수 없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류사회에는 혹은 유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중간의식을 표방하고 기장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분자도 적지 않다.

혹은 계급을 초월한 국가를 몽상하고 혹은 계급을 초월한 사상, 계급을 초월한 이해를 꿈꾸고 있다. 특히 가장 가증한 현상의 하나는 명명백백 현제도를 흉내 내고 유산계급의 입각지에서 있으면서 고의로 제삼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산대중에게 추파를 보내는 그네들이다. 문학은 사회의 산품이요 인류의 소유물이다.

인류의 생의 표현이요 생의 작용이요 실천의 소산이다. 문학도 사람이다, 사람이상의 아무것도 아니요 사람이하의 아무것도 아니다. 의식이 생활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로 그의 사회생활이 의식을 결정하는 사람이다.

계급을 떠나서 존재 할 수 없고 계급을 초월하여 생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람의 생산품인 문학, 이와 같은 사회생활의 반영인 문예사상은 사회적 계급대립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양대분 되지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유산계급적의식, 유산계급적 입각지에서 현 제도를 흉내 내거나 또는 무산계급적의식, 무산계급적 입각지에서 현 제도를 부인하거나 다만 이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 계급을 초월한 의식, 계급을 초월한 이해가 존재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급을 초월한 문학이 존재할수없고 계급을 초월한 작가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사회에는 혹은 비교의 문학은 사회성, 문학의 계급성을 부인하고 계급을 초월한 문학, 계급을 초월한 예술을 꿈꾸는 무리가 있다.

혹은 사회를 떠난 예술을 혹은 실감을 떠나 예술을 몽상하고 있고 혹은 예술의 절대자유를 미신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물론 하고 이와 같은 중간적 사상 중간의식의 소유자가 없지 않거니와 특히 경제적 낙후 국가인 지금의 조선에서는 이러한 분자가 심히 많다.

조선 최초의 문학혁명논자 자유이혼논자요 기미운동당시 동경 유학생 대표겸 선언서 기초인이요 상해임시정부의 가정 위원 겸 독립신문주필이요 민족성 개조논의 집필이요 후 조선문단 왕재 현 동아일보 촉탁인 춘원 이광수군은 실로 조선에서 이와 같은 중간사상의 가장 유력한 이론적 대표자가 될 것이다.

이광수군은 동아일보 신년호에 연재된 그의 최근논문 중용과 철저 조선 사람이 가지고 싶은 문학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엇이나 상변이 있거니와 문학에는 그것이 있다. 밥과 같이 신선한 공기와 물과 같이 태양의 광선과 같이 현숙한 아내와 같이 늘보니 평범 한듯 하면서도 늘보아도 물리지 아니하는 문학이 있고 반짝하는 유성과 같이 달디 단 국물과 같은 요색한 창기와 같이 일시는 반짝하여 우리의 감각을 무섭게 자극하나 얼마 아니가 곧 물리고마는 문학이 있다.

일본의 존경할만한 비평가 주천 백촌씨는 말하기를 사회가 침체의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극단에서 극단으로 달아나는 과격한 혁명가가 나와서 신기운을 열게 되거니와 그것은 일시적이요 그의 혁명의 과정이 끝난뒤에는 곳 상으로 돌아간다고 말하였고 안놀드씨와 동체이고 바이론은 당시 영단의 혁명이요 결코 연구히 영인의 정신을 지배할 시인이 아닌 것을 말하고 또 현대의 영문단에서 과격의 평을 듯는 바나드쏘도 바이론과 같은 변적 혁명적 시인 인것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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