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성 농협중앙회 옥포지점 지점장

얼마 전 일요일에 모처럼의 시간을 내어 등산을 하였다. 김해 장유면 대청계곡 뒤의 용제봉을 목적지로 정했다.

창원·마산·김해·진해주변의 인근 산들, 천주산 봉림산 비음산 대암산 불모산 장복산 시루봉 굴암산 무척산 등은 자주 오르는 곳들이고 용제봉도 빼 놓을 수 없는 코스인데 특히 용제봉은 집에서 바로 걸어 출발 할 수 있어 매우 자주 오르는 산이다. 오르는 길에 장유사에 들러 참배하고 길을 재촉하였다.

문득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장유사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처남인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사리탑이 있다고 전해진다.

이것이 역사적 진실이라면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교과서에서 배운 것 보다 아주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중국을 통해 전해진 불교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직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 원형에 가까운 불교가 아니겠는가?

집에 와서 각종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아유타국 공주인 수로부인 허황후 일행은 서기 48년에 돌배를 타고 30여명의 수행원과 함께 진해의 망산도에 도착해서 수로왕과 혼인을 하였으며 장유화상은 수행원 중 한명이다.

허황후 일행은 각종 불교 관련 물품들과 비단과 차의 종자를 가져 왔다고 하는데 지금도 김해 일대의 유명 차인 장군차는 이때에 가져 온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불교가 전해졌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된 연도는 서기 372년 전진의 순도와 아도가 고구려에 전해 준 것이 시초이고 백제에는 서기 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을 거쳐서 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는 이 보다 훨씬 늦어 서기 527년에 와서야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공식 종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면 가야국의 불교는 고구려 보다 320년이 빠르고 신라 보다는 무려 480년이나 빨리 들어 왔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따라서 가야 불교가 우리나라 불교의 효시라는 것을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락국은 그 때에 벌써 삼국에 앞서 8,000㎞ 이상이나 떨어져 있던 인도대륙상의 국가와 교류와 해상무역이 있었던 강대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에는 국가간의 혼인이 곧 혈맹으로 이어지는 외교의 굉장히 중요한 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야국 불교의 흔적은 장유사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김해 무척산의 모은암과 삼랑진 천태산의 부은암, 지리산의 칠불암, 만어사의 전설 등 승자인 신라에 의해 없어지고 사대주의사가인 김부식에 의해 왜곡된 가락국 역사는 없어진 불교 역사와도 궤를 같이 하는 것은 아닐까?

저작권자 © 거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