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선 계룡수필 회원

소꿉동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가을여행 삼아 날 보러 오겠다는 그녀의 음성은 사뭇 들떠 있었다.

실상은 이곳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출장을 오게 된 것인데 어려운 걸음이니 지체가 되더라도 만나고 가겠다고 했다. 돌아갈 거리가 먼 것은 이 순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삼십여년이 넘도록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동무였으나 그녀는 자주 내 기억 속 한 자락을 차지하고는 허락도 없이 다녀가기 일쑤였다. 심장이 울렁거리는 것은 당연했다. 

너른 운동장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줄지어 선 차들로  빽빽하다. 유료 주차장이 어디 이에 비하랴 싶다.  오늘 만큼은 아예 주차장으로 쓰기로 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을 둘러보아도 막혀 있다.

뒤뜰이라도 있을 법한데 우뚝 솟은 건물과 운동장이 전부다. 하긴 지은 지 오래 된 건물이니 어디 따로 주차장이 있겠는가.

그러니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운동장을 보고 있자니 울렁거리던 심장이 순간 멎는 듯했다.

한 쪽으로 비켜선 모습이었다면 차라리 나을 법하다는 아쉬움은 못내 털어지지 않았다.  오르지 못하는 정글짐을 발등으로 툭툭 차며 서성이다 두어 계단 오르고는 황급히 내려와서는 괜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고무 타이어로 만든 그네에 잠시 걸터앉았다가 미끄럼틀로 걸음을 옮긴다. 가을 햇살에 잘 데워진 미끄럼틀 철판에 등을 대고 눕는다. 따뜻하다. 비켜 달라는 아우성이 없어 좋다.

유유히 흐르는 실구름이 잠시 시야를 채우는가 싶더니 부신 햇살에 이내 눈을 감고 만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 내 꿈은 운동장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놀이기구가 많지 않았다.

삐걱거리는 나무 그네, 녹슨 철봉과 미끄럼틀이 전부였다. 고무줄놀이, 흙으로 탑 쌓기, 땅 따먹기, 그것도 아니면 그저 휑하니 운동장 한 바퀴를 돌기도 했다.

나는 자주 단상에 올라가 조회시간에 들었던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연설을 하기도 했다. 대답을 요구할 때는 얼른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시간 할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오는 길은 어머니께 들을 꾸중에 마음이 조여 들었으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종소리에 눈을 떴다.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가 싶더니 교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봉고차에 다투어 탄다.
하교 차량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비슷한 차는 한 두 대가 아니었다.

학원을 가는 아이들임을 그제야 알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학업의 연장이라니, 그것이 비록 특기 적성을 위함이라 해도 지금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왁자하던 학교는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정신이 혼미하다. 더러 언론을 통해 전해 듣기는 했으나 막상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승용차 한 대가 먼지를 일으키며 교문 앞을 들어선다.  어디에 있었는지 학생 하나가 뛰어나와 차에 오르자 소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키고는 황급히 빠져 나간다.

나는 흙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교문 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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