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칼럼위원

▲천창수 송진교회 목사
어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다음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합당한 결론을 내려 주십시오. 임신 중인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매독에 걸려 있으며, 안타깝게도 그녀마저 폐결핵에 걸려 있습니다. 상황이 참으로 비참하기 그지없습니다. 더욱이 그녀의 첫 아이는 장님으로 태어났고, 둘째는 사망했으며, 셋째는 귀머거리, 막내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폐결핵에 걸려 연신 피를 토하고 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지금 낙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합니다. 조언자는 바로 여러분입니다. 어떤 조언이 적당할까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낙태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방금 전에 위대한 작곡가 루드윅 본 베토벤을 죽였습니다!”

책을 출판하는 것이 평생소원인 50대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원고를 써서 많은 출판사에 보냈지만 아무도 호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퇴짜를 맞고 돌아온 원고뭉치는 쌓였습니다. 실망에 빠진 그는 원고뭉치들을 쓰레기통에 던졌습니다. 놀라서 말리는 아내에게 그는 신경질적으로 소리 쳤습니다.

“그까짓 원고 다 갖다 버려요! 원고를 쓰느라고 괜히 시간만 낭비했어.”

그 다음 날 그의 아내는 또 다른 출판사를 찾아갔습니다. 출판사의 사장은 원고라기에는 너무 크고 투박한 갈색포장의 꾸러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갈색포장지를 풀자 쓰레기통에 버렸던 원고뭉치였습니다.

쓰레기통에 묻혀서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원고는 노먼 빈센트 필 목사님의 적극적 사고방식 이었습니다. 목사님의 아내마저 포기했다면 오늘날 까지 읽히는 그 유명한 저서는 출판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바보 같은 일입니다. 그만두는 일은 언제나 매우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셉이 가슴의 상처 때문에 자기 인생을 포기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셉은 형들에게 버림받는 상처를 입었습니다. 물어물어 형들을 찾아갔는데,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버렸지요.

그리고 다시 노예상인에게 팔았고, 애굽으로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형들로 인해 받은 그 상처로 인해 인생을 막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요셉은 꿈이 있는 청년이었는데, 그 꿈을 쉽게 포기해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러나 요셉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힐 때에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로왕의 술맡은 관원장이 자기의 존재를 잊어버렸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릴 때에 드디어 꿈이 이루어질 그날이 온 것입니다.

늦추위가 심했던 지난 겨울에는 도무지 봄이 올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났고, 어느새 여름의 문턱에 들어서지 않았습니까? 조금 더 더워지면 또 이 여름이 언제 지나나 하겠지요.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될 것입니다.

한 겨울처럼 살을 에는 듯한 고통과 시련의 때를 지나고 있습니까? 곧 봄이 찾아옵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참고 견디는 가운데 당신 안에 있는 베토벤이 머지않아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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