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인자-계룡수필문학 회원

“이토 미네코입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302호 아주머니다. 같은 동양인, 바로 옆 나라이면서도 한국인과는 또 다른 외모를 지녀 이방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녀가 우리 아파트에 온 건 두 해 전이었다. 일본인이며, 조선소의 기술자로 초빙되어온 남편을 따라왔다는 것이다. 처음만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일본어를 모르고, 그녀 또한 한국어를 모르니 답답했다.

가끔 마주칠 때도 있었는데, 처음엔 눈인사만 나누었다. 언어 장벽으로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해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데 내 마음을 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던 중, 여유 있는 생선을 몇 마리 전달했더니, 다음 날 그녀가 찾아왔다. 생선의 답례로 과일을 한 바구니 들고 왔다. 차를 나누었다. 처음과 달리 한국말로 서로의 근황을 전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나에게 관심을 가져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고 싶었는데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내가 생선을 들고 갔을 때, 이제야 계기가 마련되나 싶어 무척 반가웠다고 털어놓았다.   

그간 노력을 많이 한 모양이다. 웬만한 의사소통은 물론 어려운 말도 곧잘 알아들었다.

매주 두 번 한글을 배운 덕이라고 한다. 가방에 전자사전과 연습장을 넣고 다니며, 장벽에 부딪치면 그것을 꺼내어 익혔단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진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조금 있으면 모국으로 돌아갈 터인데 참 열심이다.

대단하다는 진심어린 나의 말에 아직도 많은 노력과 학습이 있어야 한다며 부끄러워했다.
난 일본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그녀를 통해 조금씩 알 수 있었고, 그녀 또한 한국의 모습을 나를 통해 익혀 나갔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평범한 주부였다고 한다. 세상일은 물론 이웃인 한국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여러 나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한국의 풍습이나 유적지, 박물관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비슷한 의식은 같이 공감하면서 즐거워했고, 우리 시대를 넘어서 아이들 세대에 대한 걱정과 우려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서로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많은 시간을 같이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젠 그녀를 자주 보는 편이다.

우연이 아닌 필연에 의한 만남을 만들기 때문이다. 가끔 자투리 시간을 내어 차를 나누고 있다. 그녀 부부가 가끔 여행할 때면 그곳의 명승지나 가볼 만한 곳을 알아두었다 차편과 함께 소개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 곱지 않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지금도 터무니없는 억지에 분노가 일기도 한다. 그걸 생각하면 이 여인을 적대시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녀는 참 따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 같다. 아직은 일본식 발음이 내 귀에 익숙지 않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매력을 느끼는 중이다.

예쁘게 포장된 꾸러미를 슬쩍 내민다. 본국에 다녀오면서 가져온 차 종류일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한지로 만든 접시였다. 얼마 전 전주에 다녀올 일이 있다 하기에 몇 곳을 소개했다.

그 때 한지공예 전시관도 알려주었는데 작품이 너무 멋져 몇 가지를 구입하면서 내 것도 챙겼다는 것이다. 한국 것을 사랑하는 그녀가 오늘 따라 왜 그리 다정하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그녀는 한국의 모든 것에 흠뻑 빠져 있다. 이곳 사람들이 좋으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의 멋스러움에 취해 쉽사리 눈을 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외로움보다 한 곳이라도 더 가보고 싶고, 또 알고 싶다고 한다. 난 그녀를 진정한 내 이웃이라고 믿는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이보다 더 한국적일 수가 없는 그녀이기에 이질감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니 밀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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