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처럼 날이면 날마다 눈만 뜨면, 촛불문화제다 농성이다 하고 하루가 지나면 물가가 오른다고 하고 농성이다 파업이다 백일밖에 안된 정권의 퇴진이다 하며 어린아이의 유괴 및 성폭행 강도 살인 등이 횡횡하고 난무하는 현실에서 날이면 날마다 좋은 삶을 사는 것은 어떻게 해야 될까?본인은 산사의 승려이기 때문에 불교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 보고자 한다. 선
옛날에 어떤 가난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남의 논도 조금 부치고, 산에가 서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내다 팔면서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이 가난한 집에는 제사가 많아서 농부는 농사를 지을 때마다 찬물을 떠 놓고 정성껏 제사를 올리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제사만은 그냥 찬물만 떠놓고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어머
‘옛 사람이 말하기를 ‘밖으로 공부를 짓는 사람은 도대체가 바보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대들이 어디를 가나 주인공이 되기만 하면 선 자리 그대로가 모두 참되어서, 어떠한 상황이 닥쳐온다 하여도 그대들을 어지럽히지 못한다. 설령 묵은 습기와 5무간죄의 업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큰 해탈 바다가 되는 것이다.’-
달력은 음력 오월, 즉 한여름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부처님오신날이 들어있는 음력 사월입니다. 오월은 그래서 자비광명이 충만한 달입니다. 오월을 보내며 부처님 오신 참뜻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가 현재 네팔에 위치한 룸비니 동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여년 전만 해도 역사의 흔적을 찾지
불기 2552년, 부처님 오신 뜻 새기며 합장 올립니다. 오늘 우리들은 태양처럼 찬란하고 분명한 마음으로 부처님 오심을 찬탄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거룩하신 분의 가르침을 감사와 보은의 마음으로 가슴깊이 새기며, 부처님께서 사바에 오시어 중생에게 외치신 금구성언(金口聖言)을 담아 진리의 연등에 밝은 불빛이 되려 합니다.1. 자유로움이 충만한 인간해방
종교는 유일신적 종교와 법신론적 종교, 예언적 종교와 신화적 종교, 윤리적 종교와 자연적 종교라는 관념으로 종교를 대립시켜 논하는 것이 서구의 종교 분류법이고, 전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며 후자는 동양의 제종교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이같이 양두화 된 두 종류의 유형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주류적인 기독교 서구종교 학자들에게 의해 분류된 것들
봄은 참으로 신묘(神妙)한 계절이다.지난 여름부터 봄을 준비한 동백과 목련이 있는가 하면, 단단한 가지에서 꽃망울 터뜨리는 매화 살구 복숭아 앵두 벚꽃도 있고수선화 난초 원추리 등은 메마른 대지에 다투어 푸른 잎을 내밀고 봄이 왔다고 알리니 참으로 묘(妙)하지 않을 수 없으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어울려 향기를 나누며 고운 모습으로 시방법계에 드러난 두두물물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종교가 어떤 신앙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신앙적 대상을 이해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 세계에는 많은 종교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절대자를 찬양하고 절대자의 구원을 바라는 형태이다. 반면에 불교에서의 부처님은 다른 종교와 같이 절대적힘을 가진 신앙의 존재가 아니다. 부처님
현실의 한국사회의 일만 민중들은 현세이익 기복성에 민감하다. 특히 현세 복락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내세라든가 자유, 평화, 자비, 구원 등과 같은 관념적이고 윤리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같은 욕구들이 민중들에게 투영될 때 종교 또한 현실 중심적인 복락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본래 불교는 교리체계나 실천 수행자체가 현실
요즘은 행복하고자 해도 행복하기가 어려운 세상인 것 같다. 무엇 때문일까?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은 ‘많은 것을 소유(多所有)’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것 같다. 행복하려면 재산이나 권력을 가져야 한다든가, 사회적 지위도 높아야 하고, 몸도 건강하고 장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이런 생각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盡日尋春 不見春 (진일심춘 불견춘)芒鞋踏遍 ?頭雲 (망혜답편 롱두운)歸來笑拈 ?花嗅 (귀례소념 매화후)春在枝頭 二十分 (춘제지두 이십분)종일토록 봄을 찾았건만 봄은 보이지 않고짚신이 닿도록 둔덕(산마루)의 구름만 밟고 다녔네.지친 몸 돌아와서 미소 짖는 매화 향기 맡으니봄은 이미 매화가지 위에 무르익어 있는 것을.......
종교란 현실의 낮은 곳(俗)에서 높은 곳(聖)으로 지향하는 인간들의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종교처럼 무조건 선택된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열심히 절대자에게 복종하며 무조건 기도만하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편협된 종교관이 아닐까?이 현실의 세계를 불교에서는 사바세계라 한다. 흔히들 말하는 속세, 즉 사바세계란 생명
망망한 광야에 한사람이 길을 가는데 뒤에서 무서운 코끼리가 나타나 그를 쫓아오고 있었다. 생사를 눈앞에 두고 정신없이 달아나다 보니 언덕 밑에 우물이 있었는데 등나무 덩굴이 그 속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등나무 덩굴을 붙들고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겨우 숨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우물 밑에는 독룡(毒龍)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고 우물중턱 사방
원칙을 지키는 것과 유연성을 지니는 것은 같이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고대 중국인들은 이를 동전의 양면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했다. 원칙에만 사로잡혀 유연성을 잃는다면 경직되어 목적을 이루기가 힘들다. 한편, 유연성만 추구하다 보면 처음에 가졌던 목적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원칙을 가지고 순간순간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성내지 않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 한 향이로다.”부처님의 이 말씀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누구라도 쉽게 이해된다. 그런데 이 말씀의 뜻을 잘 알면서도 이를 실생활에 그대로 옮겨 실천하기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사람이란 어느 동물보다 감정의 노출이 강한 감각의 성질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하루라도 이 감정을 죽이면서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월월시호월(月月是好月) 달마다 좋은 달년년시호년(年年是好年) 년년이 좋은 해로다.하루하루 모이면 달이 되고, 달이 한 묶음 되면 한 해가 된다. 나무도 나이테가 있듯이 한해 두해 세월이 흐르다 보면 우리 인생도 몸과 마음속에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업(業)이라 합니다.행복과 불행, 웃음과 눈물,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약 중에 가장 완벽한 약이 아편이라 하지 않는가. 하지만 그 완벽한 약의 사용이 조금이라도 지나치면 중독이 되어 그 자신이, 가정이, 사회가, 국가가 피폐해지며 타락의 늪에 빠지게 된다. 그 유명한 중국의 아편전쟁이 한 사회와 나라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겠는가.지구의 역사상 오늘날처럼 풍요로움과 인류자신의 과시와 오만을 가진
일란성 쌍둥이는 난자 하나에 정자 둘이 침입하여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쌍둥이를 말한다. 한 개의 난자에 한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키 혹은 체질이, 혹은 성격이 왜 다르고 틀릴까.이란성 쌍둥이는 엄마의 하나의 자궁에 두 개의 난자와 두 개의 정자가 자궁에 착상하여 태어난 형제를 말한다. 외모와 형상은 일란성 쌍둥이와 같이 비슷하
부처님께서 살아계실 당시 재가 불자 나쿨라피타 장자는 나이 120세였다. 나이가 많아 기관은 허물고 파리하고 쇠약하여 병에 괴로워 하면서 부처님을 뵙기 위하여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갔다.“세존이시여, 저는 나이 많고 쇠약하여 병에 괴로워하면서도 스스로 애를 써서 세존님과 또 전부터 존경하고 친히 아는 비구님들을 뵈러 왔습니다. 원하옵건데 저를 위해 설법해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을 지배함으로써 인간 자신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자기의 욕망을 충족해 왔다.생명연장을 위해 생명과학을 연구하였고, 보다 많은 정보와 간접경험을 위하여 IT산업을 고도로 발전시켰다. 이 결과 인간의 삶은 물질적인 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윤택해졌다.또한 변화의 강도는 과거 5천여년간의 발전과 근래 1-2년의 변화가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