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나사렛에 살고 있던 처녀 마리아는 어느 날 감당하기 힘든 말씀을 듣는다.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 말씀은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마리아는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였지만,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주의 여종이
세례 요한의 탄생기사에 보면,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때에 주의 사자가 그를 찾아왔다. 갑자기 나타난 천사를 보고 놀란 사가랴에게 천사가 말한다.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사가랴는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간구하고 있었는가?
우리 인생에는 끝임 없이 바람이 불어온다. 때로는 가벼운 바람이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어올 때도 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은 어떤 강한 바람도 제압하고 무릎 꿇게 하고 그 폭풍을 다스린다. 만약 인생의 폭풍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폭풍이 나를 다스릴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로 나
어떤 것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견해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두 사람이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한 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의 뭇 별들을 본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에서 다른 각도의 시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성도는 믿음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성경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성도는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염려해서도 안 된다. 모든 염려, 모든 고민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 성도들이다. 그런데 성도들이 고민해야 할 일이 있다. 성도들이 염
북미대륙 위쪽에 알래스카라는 땅이 있다. 대부분 얼어붙은 땅이기는 하지만 아주 넓고 광활한 땅이다.이 땅이 지금은 미국의 한 주로 되어 있다만 전에는 러시아의 땅이었다. 1867년에 러시아가 그 당시 돈으로 720만달러를 받고 이 땅을 미국에 팔아넘긴 것이다. 얼어붙어서 쓸모없는 땅인데다가 러시아에서 볼 때에는 바다를 하나 건너가야 하는 먼 곳에 있다. 국
전설적인 팝 가수 엘비스는 약물중독으로 죽어가며 "난 만족이란 걸 배우고 싶다"고 절규했다 한다.그의 부인 프리실라는 남편에 대해 "엘비스는 자신이 이 땅에 사는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산 사람이다. 그는 이 땅에 사는 어떤 중요한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설교하는 목사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누군가를 섬기는 사회
(메시아) 성경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했다. 성도의 삶은 기도와 찬송의 삶이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찬송하는 자가 되었다. 찬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승리하는 자가 찬송한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에게만 찬송이
성경은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다(롬 6:15)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법의 원리를 뛰어넘어 은혜의 원리로 살아간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우리가 법아래 있었다. 법에 따라 판단 받고 법에 따라 살아야 했던 우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다. 은혜 아래 있다. 법이란 좋든 싫든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의 게티즈버그 전쟁에 관한 이런 일화가 있다. 대학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던 교수였던 체임벌린은 북군의 한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라는 작은 마을로 이어지는 곳에 북군 8만 병사가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맨 왼쪽 진열에서 물러설 수 없는 전투를 명받았다. 만약 이곳을 사수하지 못하면 포토맥의 북군 병사
청주의 어느 교회 목사님의 전하는 이런 인상 깊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사님의 친구가 장애인으로서 판사가 되었는데 그 가정 내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두 분은 제천 한 마을에서 함께 자랐는데, 목사님 집은 잘 살고, 친구 집은 너무 가난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버지가 술만 마시고 도박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집도 논도 밭도 팔아서 도박으로 다
세상에는 많은 언어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두 가지 언어 밖에 없다. 하나는 믿음의 언어 즉 하나님 나라 언어이고, 또 하나는 어둠의 나라 언어, 흑암의 나라 언어이다. 하나님 나라 언어는 찬양이고, 어둠의 나라 언어는 불평이다. 찬양이라는 말뜻을 국어 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칭찬하여 기리어 드러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찬양이라는 말은
바울 사도는 종종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한다. 이것은 아주 충격적인 자기소개이다.'종'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번역하면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은 노예가 없으니 노예가 얼마나 천한 신분인가를 실감할 수가 없다. 당시에는 로마 인구의 약 절반이 노예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날 공장의 기계나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어느 도둑이 부잣집을 털고는 다음 집에 들어갔는데, 안에서 모자간의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아, 먹을 게 하나도 없구나." 너무 가난한 집이다 싶어 도둑의 마음이 아팠다. "엄마, 그럼 똥이라도 먹어요." 도둑은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어 문 앞에 돈 보따리를 놓고 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안에서는 모자간에 화투
어느 목사님이 지난 50년 동안의 그의 사역을 되돌아보면서 이런 고백을 했다. "지난 50년 동안 사역하면서 내게 많은 유혹이 있었다. 마치 그것은 장애물 경기와도 같았다. 죄의 유혹, 세상의 유혹, 질병, 고통, 시련, 가난, 좌절과 같은 장애물들이 있었다. 이런 장애물들을 내가 뛰어넘지 못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인정해 드리지 못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이후로 이러한 습성은 계속되어 왔다. 야고보서 4:11-12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행세하려는 습성 중의 하나를 지적하고 있다.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두 사람이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한 사람은 진흙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하늘의 많은 별들을 본다. 똑같이 물이 든 컵을 보지만,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또 '반밖에 안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관점이나 생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이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대한 시각에 있어서도
예수님은 골고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 죄는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가져온다. 그러기에 죄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높은 장벽을 만들게 한다. 죄는 살인을 자행하게 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한다. 죄가 들어온 후에 인간관계가 파괴되었다. 가인이 그 아우인 아벨을 죽이게 되었다. 죄가 지배하는 세계에는 정당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올바른 가족관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신다. 말씀을 통하여 복을 주시고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베푸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의 안내를 받아야 되고 말씀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제일 귀한 선물은 성경이라고 고백했다. 성경이 왜 귀한가? 기독교는 성경 말씀
성탄절이 다가오며 곳곳에 성탄트리가 세워지고 캐롤송이 울려퍼진다. 우리는 성탄절에 무엇을 기대하는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누가복음에서는 성탄과 관련하여 ‘기다림’이라는 단어를 세 사람에게 사용하고 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시므온: 위로를 기다림.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다. 위로란 인간이 고립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