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으로 3월3일은 음력으로 2월초하루다. 음력 2월은 기후생태학적으로 따뜻한 저기압과 차가운 고기압의 확장과 소멸이 불규칙적이어서 기압의 변화가 심하고 따라서 바람이 많은 달이다.어업이 생업인 해안지방에서는 바람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일어나는 자연현상 앞에 인간의 공포는 깊어졌고, 급기야는 바람을 신격화하는 경외심까지 생겨났다.'동국세시기' 이월 조에 '영남지방에는 집집마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이를 영등신(靈登神)이라 한다.'고 했다. 영등신은 바람신(風神)이다. 다른 지방에서는
중국 고대신화의 창조신이 반고(盤古)라면 우리나라는 마고할미가 있다. 공통점은 여신이다. 인류역사는 모계사회가 먼저 형성되었다는 반증이다. 마고할미는 아무리 높은 산도 발아래 있고, 아무리 깊은 바다도 정강이에 찰 정도의 거인신이다. 어떤 설화에는 동해와 서해를 두 발로 딛고 서서 손으로 땅을 쭉 훑으니 한반도가 생겨났다고 했다.마고는 이름이고 할미는 존칭이다. 마고(麻姑)는 '삼베여인'이란 뜻이다. 왜 하필 삼베인가. 아득한 옛날 뽕나무가 재배되기 전에는 삼(麻)이 중요한 의생활의 수단이었고, 그때 사람들은 마포로 된 질긴 섬유로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지만 정초에는 간지일(干支日)마다 세시풍습이 있었다. 올해의 경우로 보자. 양력 2월1일은 설날로 일진은 상유일(上酉日) '닭날'이다. 이날 바느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된다고 바느질을 금했다. 2일은 '개날'이다. 개가 텃밭을 해친다고 일손을 쉬었다. 3일은 '돼지날'로 피부가 검은 사람은 팥가루로 세수하면 살결이 희고 고와진다고 믿었다.4일은 '쥐날'로 콩을 볶아 먹었다.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끄시르자'고 주문을 외웠고, 논두렁에 쥐불을 놓았다. 5일은 '소날'이다. 소에게 노역을 시키지 않았고,
우리 문화에 집터나 묘터는 발복의 근원이 된다. 길지란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는 물이 있어야 한다. 이를 '배산임수'라 한다. 그리고 양쪽에 산이 있는데 이를 '좌청룡우백호'라 한다. 왼쪽 산은 용이 승천하듯이 꿈틀거리면서 살아 움직이듯 해야 하고, 오른쪽 산은 절집 산신각 탱화에서 보듯이 배를 땅에 붙이고 얌전하게 엎드린 호랑이 모습이어야 좋은 터다. 용은 동(動)하고, 호랑이는 정(靜)해야 한다. 이게 기본이다.호랑이가 날뛰고 설치면 난리가 난다. 옛 사람들에게 호환(虎患)은 두려움의 존재였다. 조선왕조실록에 호랑이가 727회
올해는 임인년(壬寅年)이다. 임(壬)은 검은색, 인(寅)은 호랑이로 '검은 호랑이(黑虎)해'가 된다. 호랑이의 순우리말 이름은 '범'이고, 한자로는 '호(虎)'다. 범은 무섭고 사나우면서 한편으론 신령한 존재라 입에 담는 것조차 두려워했기 때문에 범이라는 말 자체가 금기어가 되면서 민간에서는 호랑이라고 부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는 속담은 함부로 호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도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호랑이의 어원이 '호(虎)와 ~랑이'의 합성어냐, '호(虎·범)와 랑(狼·이리)'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형태인가 등 여러
뛰어난 장수라 할지라도 군율을 어겼을 때 책임을 묻는 것이 '읍참마속'이라면, 잘못을 저질렀지만 포용하면서 안아주는 것은 '절영지회'이다.춘추오패의 하나였던 초장왕(楚莊王)이 반란을 진압한 후 공신들을 불러 누대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에는 왕의 애첩도 함께 했다. 늦은 밤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다 꺼졌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한 장수가 애첩의 몸에 손을 댔다. 애첩은 재빨리 그 사람의 갓끈을 확 당겨 끊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왕에게 일러바쳤다. 그때 왕이 말했다."왕명이다. 불을 켜기 전에 모두 자기 갓끈을 끊어버
제갈량에게는 자식처럼 아끼는 마속(馬謖)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마속이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보낸 편지에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했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사이를 짐작할 수 있다.더구나 마속은 뛰어난 장수였다. 제갈량이 마속을 참수하려 했을 때 주변의 많은 장수들이 마속은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장수이므로 살려야 한다고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법을 엄정히 지켜 기강을 바로 세워야 했기에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베었다.우는 것에는 두 종류가 있다. 소리 내어 우는 것과 소
주나라 왕실의 세력이 약해지자 제후들이 힘을 쓰기 시작했다. 이때를 일컬어 춘추시대라고 하는데, 그중 강력한 다섯 나라를 춘추오패(春秋五霸)라 한다. 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오나라의 합려, 월나라의 구천을 가리킨다.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국경을 마주하는 가까운 나라였다. 그러면서도 두 나라는 앙숙이었다. 오나라 합려는 월나라 구천과의 싸움에서 전사했다. 아들 부차는 원수를 갚을 때까지 거친 섶나무에서 자면서 이를 갈았다. 와신(臥薪)이란 바로 섶나무 위에서 잔다는 뜻이다.상황은 바뀌어 이번에는 월나라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고구려의 혼인풍습이 기록돼 있다. 남자집과 여자집이 의논하여 혼사가 결정되면 여자 쪽에서는 집 뒤에 작은 별채를 짓는다. 사위가 머무르는 집이라 해서 서옥( 屋)이고, 방은 서방( 房)이다. '서방님'이란 호칭이 생긴 유래다.혼인날 저녁 무렵에 사위될 사람이 여러 사람과 함께 신부집에 와서 문 밖에서 꿇어앉아 절하면서 이집 딸과 하룻밤 잘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한다. 신부 부모는 안 된다고 거절한다. 그렇게 세 번 청하면 신부 부모는 못이기는 척 허락한다. 그러면 남자 측에서는 예물로 가져온 돈과 비단
선위(禪位)란 왕이 살아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일을 말한다. 조선 초기 태조가 정종에게, 정종이 태종에게, 태종이 세종에게 선위한 일이 있다. 이때를 제외하고 실제로 선위한 경우는 없었다. 한 마디로 그럴 마음이 전혀 없으면서 벌리는 일종의 정치쇼였다.어느 날 갑자기 왕 못하겠다고 하면 그 말이 진짜인 줄 알고 세자나 신하들이 덥석 물었다가는 역모로 몰린다. "아니 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떼거리로 무조건 반대시위를 하고, 세자는 세자대로 자식이 불충하여 잘못 보좌한 죄라며 석고대죄를 해야 살아남는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자 가장 극렬하게 반대한 집단이 사대부와 양반들이었다.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고 했으니 글을 쉽게 익히면 국민이 똑똑해져 통제가 어렵다는 것이다.금년 8월에 황금의 4일연휴가 있었다. 광복절이 일요일이라 16일 대체공휴일과 코로나로 지친 국민의 피로감을 덜어준다는 취지로 17일 임시공휴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회에 나온 행정각료가 말했다. "사흘 동안 연휴입니다." 그러자 국회의원이 "4일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4일 사흘간입니다." '사흘'
1800년 정조가 죽고 열한 살의 순조가 즉위했다. 어린 왕을 잘 보살펴 달라는 정조의 유탁을 받은 김조순은 그의 딸을 순조의 비로 들이는데 성공한다. 그때부터 60년간 외척인 안동 김씨의 세상이 되고 만다.본래 '세도(世道)정치'란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를 표방하는 이념이었으나, 안동김씨는 정치적 세력에 의한 '세도(勢道)정치'로 나라는 큰 혼란에 빠진다. 이런 정치적 위기는 1863년 고종의 왕위 계승으로 막을 내린다.외척에 의한 국정농단을 지켜본 대원군은 몰락한 가문에 태어나 여덟 살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자란
'하이 눈'은 서부영화 걸작 10편중에 1위를 차지한 명작으로 지금부터 약 70년 전인 1952년에 만들어진 흑백 서부영화의 고전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백악관에서만 17번을 보았다는 영화다.영어로 'noon'이라 하면 낮12시를 중심으로 그 언저리 시간까지 다 허용되지만 'High noon'은 정확한 낮12시를 가리킨다. 따라서 영화의 제목 속에는 정오(正午)라는 뜻과 결정적인 순간(절정)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서부의 어느 마을, 보안관 임기를 마친 케인(게리 쿠퍼)은 에미(그레이스 켈리)와 막 결혼식을 올리고
절집에 가면 가람의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전각이 산신각이다.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인상 좋은 할아버지와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본래 산신령은 호랑이다. 그러나 호랑이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 인자하고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화현(化顯)하여 나타나게 된다.예로부터 사람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겼다. 소원을 빌러가는 곳도 산이요,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산이다. 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생기고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산의 품성을 닮는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적 지형이 산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산악숭배사상으로
소주는 아랍사람들이 세계최초로 곡물에서 알코올을 얻어내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 양조법을 무슬림들이 발전시켰고, 몽골군이 이슬람제국을 침공할 때 배워와 증류식 제조법을 완성한다. 그 후 원나라가 고려에 소주제조법을 전해준다.몽골군이 일본원정을 위해 부대의 본영을 개성, 안동, 제주에 주둔시킨다. 따라서 이곳이 자연스럽게 소주의 중심지가 된다. 지금도 안동소주나 제주 고소리술은 그 제조방법이 원형과 별 차이가 없다. 이들 술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전통적으로 조상제사에 청주나 막걸리는 사용하지만 소주는 쓰지 않는다. 소주는 우리
꽃피면 달 생각하고 달 밝으면 술 생각하고 /꽃 피자 달 밝자 술 얻으면 벗 생각하네 /언제면 꽃 아래 벗 데리고 완월장취 하려뇨' 조선 후기 대제학을 지낸 이정보 선생의 시다. '완월장취(玩月長醉)'는 달과 함께 술을 마시며 오래도록 취하고 싶다는 뜻이다. 술 마실 핑계거리인데도 낭만과 여유가 보이는 술의 상상력이 너무 아름답다.술 마실 핑계로 치자면 연암 박지원 선생을 따를 자가 없다. 그 유명한 술낚시는 연암의 재치와 해학을 잘 보여준다. 연암은 가난해서 술을 마시려면 집에 손님이 왔을 때뿐이었다.연암은 술 생각이 나면 집 근
우리나라와 서양은 음식문화가 다르다. 서양은 단품형 메뉴 중심으로 식사를 한다. 스프 먹고 나면 고기가 나오고, 고기 먹고 나면 과일이 나온다. 스프와 고기와 과일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다. 음식을 섞는 법도 없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폭탄주가 없다.그에 비하면 우리의 음식문화는 통합형 메뉴다. 모든 게 한꺼번에 올라온다. 밥과 국을 비롯해서 김치·나물·채소·생선 등 갖가지 반찬들이 동시에 진열된다. 먹는 사람이 자기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 밥 위에 고기를 얹어 먹고, 밥을 국에 말아 먹기도 한다. 서양처럼 밥 먹고 나서 국 먹
우리나라 오천원권 지폐의 모델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다. 그리고 오만원권 지폐의 모델은 어머니 사임당 신씨다. 아마 세계적으로 모자가 동시대의 화폐 모델이 된 사례로는 유일할 것이다. 율곡 선생은 퇴계 이황 선생과 함께 조선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이면서도 유능한 정치가로 십만양병설이나 대동수미법, 군정개혁 등을 주장했다.조선시대에 출세의 첩경은 과거급제였다. 과거시험은 보통 9세부터 일평생을 바쳐 공부해야 한 번 될까 말까한 시험으로 문과 평균 합격자 나이가 35세였다. 할아버지가 진주대첩의 김시민 장군이고,
어렸을 때 이런 노래를 불렀다. '뽕나무가 방귀를 '뽕' 옆에 있던 대나무가 '대끼 놈!' 참나무가 '참아라'…' 그래서 뽕나무는 방귀대장, 대나무는 욕쟁이, 참나무는 어른나무라고 여겼다. 그런데 식물도감을 다 뒤져도 참나무는 없다. 참나무는 상수리나무·떡갈나무·신갈나무·갈참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 등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종류의 통칭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수종으로 참(眞)자가 붙어 진짜나무로 여겼다.'들국화'는 동요뿐 아니라 시나 수필·영화의 제목이 되고, 가수이름도 되고 술 이름에도 들국화가 있다. 그만큼 모두가 좋아하는 꽃
'석권'의 본뜻은 '돗자리를 말다'인데, '마치 돗자리를 말 듯이 어떤 분야나 영역에서 굉장한 기세로 휩쓸어 남김없이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 '위표팽월열전'에 처음 나온다. 이 두 사람은 어쩌다 기회를 얻어 왕의 자리까지 올랐지만, 끝없는 권력의 욕심 때문에 허무한 말로를 맞이한 인물이다.위표(魏豹)는 항우가 초패왕이 되자 위왕으로 봉해졌는데, 유방이 진격해 오자 유방 편에 붙었다가, 유방이 수세에 몰리자 다시 항우 편에 붙는 등 권력의 편만 쫓다가 죽임을 당했고, 팽월(彭越)은 유방을 도와 해하전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