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우리 주님은 두아디라교회를 칭찬하실 때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신 후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하셨다. 두아디라 교회의 그 행위가 아름답고 귀하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다는 것이다.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묘미요 아름다움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작은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였지만, 그러나 점점 창대해져 가고, 그래서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다운 것, 처음보다 나중이 더 풍성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법칙입니다. 이 자연의 법칙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내신 하나님의 질서인데 이 원리대로 하나님은 세상을 운행하고 계시며, 이 질서대로 세상은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8)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속담에도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라는 말이 있지요. 아주 간단한 속담이지만 심은대로 거두는 하나님의
대한문인협회 문학대상을 수상한 시인 솔새 김남식 선생의 시(詩) 중에 '가을은 깊어가고'라는 시가 있는데,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추수의 계절/ 내 삶을 계산하여 보고/ 그 손익을 따져야만 할 계절이다./적자 인생에서 흑자 인생으로/ 바꾸어지기 위해/온 밤이 하이얗게 바래도록/ 자기를 지켜보아야 하리라./감사의 계절/ 마음으로 자기를 감싸는 계절이다./위대하신 손길 앞에/ 자신을 드리는 뜨거운 계절이다./감사의 제단에/ 나의 뜨거운 심장을 드려/ 제물이 되게 하리라.'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11월은 감
1517년 10월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 안에 있는 교회당 앞에 대자보를 걸었다. 95개조로 된 항의문이었는데, 주요 내용은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이었다.1457년 교황 칼릴스투스는 연옥에서 고통 받는 자들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도 면죄에 의해 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원죄로 말미암은 죄는 세례를 받을 때에 사라지지만, 자범죄는 면죄 받아야 하는데, 자신도 알지 못했던 죄나 고백하지 못한 죄는 여전히 남아 있어, 사람이 죽으면 연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면죄부를 사면 그 모든 죄가 청산되어 천국으로 간다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영국의 아놀드 토인비는 자신의 책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류는 좋은 자연환경에서는 문명이 태어나지 않았고 거의 다 거칠고, 가혹한 환경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나일강의 이집트문명을 일으킨 민족은 아프리카 북쪽에서 수렵생활을 하며 지내는 이들이었다고 합니다. 5000∼6000년 전 강우전선이 북쪽으로 이동하며 아프리카 북쪽이 사막으로 변하자 이들은 세 부족으로 나누어지는데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로 400m 계주 경기에서 선두로 달리던 선수가 골인지점 250m를 남겨놓고 근육이 파열되면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1992년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올림픽 400m 계주 준결승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넘어진 선수는 영국출신 데릭 레드몬드로서 그는 강력한 우승 후보였습니다. 골인지점을 앞두고 있는 레드몬드를 관중들이 안타깝게 바라봤습니다. 넘어진 레드몬드는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 엄청난 피땀을 쏟은 사람입니다. 레드몬드는 다리의 통증보다도 자신의 꿈이 깨어진 것을 괴로워 하면서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자유(freedom)입니다. 그래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하면서까지 자유를 갈구했으며, 그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노력해 왔던 세계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유란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절대가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사람은 누구든지 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뜻(의지)에 따라 행동하며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자 합니다. 그건 하늘의 존재(신학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헌법에서
어떤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던 이 가정에 갑자기 근심거리가 생겼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했다. 죽기도 전에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유대사회 전통에서는 아버지 없이 사는 게 낫겠다고 하는 선언이다. 이는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다.그런데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말을 들어줬다. 살림을 큰 아들, 작은 아들에게 각각 나눠 줬다. 작은 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다. 거기서 허랑방탕해 재산을 다 허비하고 빈털터리가 됐다. 궁핍해 살 길이 막막한 그는 남의 집 머슴살
문재인 정부는 광화문 촛불혁명에 의해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무지개빛 희망을 안고 태어난 정부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그 무능과 부패·수구 꼴통의 모습을 더이상 묵과할 수 없었던 성난 민심이 폭발해 새로운 정부, 변화된 정부의 모습을 기대하며 문제인 정부의 출발에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보낸지 3년이 지나 4년 차에 접어들고 있습니다.많은 기대를 가졌습니다. 성공적인 정부가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처참하게 무너진 박근혜 정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고 확연히 차별화 된 정부를 세워 갈 것으로 기대했고, 매일 새벽마다 두
인생을 두고 갈대와 같은 인생, 나그네와 같은 인생 등 여러 가지로 비유하는데, 성경에 보면 그릇에 비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온갖 모양과 형태의 그릇들이 진열돼 있는 그릇점에 가보면 그 비유의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런 그릇도 있나 싶을 정도로 천태만상의 그릇들을 보면 마치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상 곳곳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을 떠올리게 되며, 생각해 보면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싶습니다.인생을 그릇에 비유한 것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모든 그릇은 토기장이들이 빚어 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선포하시며 나타나셨다.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도 예수님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천국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지난 6월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0주년을 맞이하는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당시, 남한의 상황은 전쟁을 전혀 대비하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은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면서 오랫동안 비상근무를 이어왔기 때문에 전쟁 전날인 6월24일 많은 군장병들이 외박과 외출을 한 상태였습니다.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아주 열악한 형편이었습니다. 당시 북한군의 병력은 19만8380명인데 비해 남한군은 10만5752명에 불과했습니다. 북한의 곡사포는 552문인데 비해 남한은 91문에 불과했고, 대전차
요즈음 우리 손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핸드폰입니다. 어디를 가던지 종일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전화하고, 문자를 주고받기도 하고, 인터넷도 보고 그러지요.외출할 때 간혹 핸드폰을 잊어버리고 안 가지고 나갈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왠지 불안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패닉상태에 빠지게 되기에 집을 나설 때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마누라가 아니라 핸드폰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현대인들의 문명의 상징인 핸드폰은 우리 생활 가운데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우리가 종일 휴대폰을 사용하다 보면 배터리가 방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성령의 활동을 두 가지 분야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성령님께서 정규적으로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죄를 입증하시고 회심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일하게 하시고 성화의 과정을 밟게 하시는 일이다.또 하나의 활동은 성령님의 예외적인 사역이다. 성령님께서 평상적인 사역을 하시는 동시에 예외적인 사역도 하시는데 그 예외적인 사역은 교회사에 두드러진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에 시대 시대마다 일어나는 부흥의 역사가 바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다.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
덕망이 높고 지혜로운 스승으로 소문이 자자한 현자에게 많은 제자들이 몰려들게 됐는데 그 가운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못한 청년도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매일 일으키면서 젊음을 허비했는데 어느 날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뉘우치고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잘못을 빌었지만 사람들은 청년을 향해 고운 시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그 결과 청년은 고민과 번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무거운 마음을 간직한 채 힘겨운 삶을 이어가다 덕망 높고 지혜로운 스승을 찾아가서 자신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세상사 사건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크고 작은 많은 사건들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하고많은 사건들을 마주하며 살아 갈테니까 하는 말이겠지요. 모든 사건은 원인이 없는 게 없고, 모든 사건 또한 그 나름의 의미를 갖지 않은 게 없다고 하지요. 그래서 2천 년 전 나사렛 예수는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는다(마10:29)고 말씀하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켜면 어디를 돌려도 줄곧 코로나 얘기로 가득합니다. 우리나라는 말 할 것도 없고 전 세계가 코로나의
이사야는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았다(사 6:1).웃시야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서 52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다가 BC 740년에 죽었다. 웃시야는 통치 초기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대하 26:5). 하나님은 웃시야를 도우셨고,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당시 앗수르에는 강력한 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등장하였
세상 속에는 모든 사람이 듣기를 원하고 부르기를 원하는 아름다운 말,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환희·감동·소망을 주는 말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말 중에 세 가지를 꼽으라 했더니 어떤 사람은 '엄마·열정·미소'라는 말을, 어떤 사람은 "고맙습니다·미안합니다·사랑합니다", 또다른 사람은 "여긴 네 집이야, 너는 내 친구야, 나는 너와 늘 함께 해"라는 말을 꼽았습니다.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말이 세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큰 어려움과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도 예외가 아닙니다.이탈리아는 확진자 12만명에 1만3000명이 사망했으며, 세계 초강국인 미국은 13일만에 20만명 확진자에 5000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코로나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전전긍긍 하고 있으며,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이런 와중에 우리나라는 확진자 9976명에 169명(지난 2일 기준)이 사망했으니 그래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코로나 전염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6:35)예수님은 자신을 일컬어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에는 생명을 나타내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비오스'와 '조에'다.'비오스'는 심장의 맥박이 뛰는 동안 유지되는 우리 육체의 목숨을 가리킨다. 모태에서 태어나 늙어 죽을 때까지 우리 온 몸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활동할 동안만 살아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이 비오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