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본다. 검은 염색약이 덕지덕지 묻은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삐쳐 있다. 폭탄을 맞은 것 같은 머리모양에 빨간 가운을 입은 내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한 달에 한 번쯤 이런 몰골로 미장원에 앉아 잡지를 들춰보며 시간을 허비한다. 여러가지 색깔로 멋 내기 염색을 하는 아가씨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머리숱도 많고 너무 까만색이라 어쩐지 답답해 보인다며
천사의 집에 가면 영이란 아이가 있다. 영이의 꿈은 천사가 되는 거다. 어느 누가 꿈을 물어도 답은 천사다. 왜냐고 물으면, 이유는 옆으로 기어 다니는 친구를 가리킨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다면 천사가 되어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천사의 집에는 장애인 아이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 정신과 육체가 성치 않은 아이들이다. 부모들이 버린 아이들. 그중 영이는 신체
올 들어 비가 잦다. 빗물에 몸을 씻은 화초들이 젖은 몸으로 바람을 맞는다. 잎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바람의 흔들림에 몸을 말리는 모습이 사뭇 수줍다. 채 마르지 않은 물기 때문일까. 싱싱한 화초들이 제 빛깔 이상으로 빛이 난다. 아까부터 마당에 줄지어 서 있는 화분을 보고 있다. 출·퇴근 시에 또는 잠시 잠깐 짬을 내어 이곳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마음이 맑아
봉수대에 오른다. 숲정이에 들어서자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의 소리가 청량하다. 참 정겨운 소리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다정히 안겨들 땐 정말 가슴속까지 포근하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켜켜이 쌓여 있는 숲길을 걸으며 스스로 초연해지기도 한다. 유한한 삶 비우며 살라고 무언의 가르침을 준다. 비우지 못한 무거운 마음도 산을 오를 때는 가벼워지니
“이토 미네코입니다.”우리 아파트에 사는 302호 아주머니다. 같은 동양인, 바로 옆 나라이면서도 한국인과는 또 다른 외모를 지녀 이방인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녀가 우리 아파트에 온 건 두 해 전이었다. 일본인이며, 조선소의 기술자로 초빙되어온 남편을 따라왔다는 것이다. 처음만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일본어를 모르고, 그녀 또한 한국
사진을 본다. 영락없는 할망구다. ‘에그 입이나 다물고 웃을 것이지’ 속임수 없이 드러내는 정직성이 오히려 밉살맞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데 사진이 실상을 보여주며 경종을 울린다. 한쪽 어금니가 모두 빠졌다. 그리 된지 오래지만 게이지 않고 지냈다. 입 벌린 모습을 스스로는 볼 수도 없고 한쪽으로 잘 씹고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태평스러운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