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澤東)의 홍군(紅軍)이 장제스(蔣介石) 국민당군에 쫓기는 장정(長征) 때 귀주(貴州)의 한 산골마을인 마오타이에 도착했다. '3일 맑은 하늘이 없고, 3리 평야가 없고, 3푼 돈을 가진 사람이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銀)'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그 곳에서 홍군은 청나라 때부터 빚어온 향토주 마오타이주를 마시면서 혁명의지를 불태웠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옷을 벗는다.미국 문학사에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작가이며 자유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트 휘트먼(1819~1892)은 시골집에서 옷을 입지 않고 살았다. "이렇게 자연과 가까이 있었던 적이 없다.… 상쾌하고 머리가 맑고 고요한 자연 속의 나체!"라고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작품을 보면
영화 빠삐옹은 '앙리 샤리에르'의 실화소설을 1973년 영화화한 것이다. 빠삐옹은 불어로 '나비'라는 뜻으로 주인공의 가슴에 새겨진 문신이다.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형을 받은 빠삐옹이 꿈에 죽어 재판을 받는데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하자 재판관은 '인간이 짓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인생을 낭비하는 죄'라는 대사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영원한 화두
결국 낙마하고 말았지만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끝내고 나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문회를 해보니 염라대왕 앞에 가면 이런 식으로 심판받나 싶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럼 우리만 그런가? 인사청문회의 모델이 되는 미국은 더 철저하다. 청문회 해당 공무원은 60쪽이 넘는 '개인정보진술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이를
오늘날 정부조직이 대통령-국무총리-장관으로 짜이듯이 조선시대에는 왕-정승-판서로 이어지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맥락은 같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총리와 17개의 부처 장관이 국정을 담당하게 되지만, 조선시대에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이 된 의정부(議政府)와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6조 판서가 있었다. 왕이 의정부에 힘을 실어 주느
새해가 되면 절로 인사를 나누는 세배(歲拜)와 그림으로 인사하는 세화(歲畵)가 있다.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인 도화서(圖畵署)에서 수성도(壽星圖 남극성을 말하며 인간의 수명장수를 맡은 별자리), 선녀도(仙女圖), 직일신장도(直日神將圖 하루의 일상사를 맡은 신) 등의 그림을 임금께 그려 바치면 이를 선물하는 옛 풍습이다. 지금으로 치면 연하장과 같은
음력으로 한해의 마지막날이 섣달그믐이다. '섣달'이라는 어원은 '설달'이라는 용어의 변화로 보인다.섣달그믐이 되면 온 집안 식구들이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며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목욕시설을 갖추기 어려운 가옥구조 때문에 설과 추석 그렇게 일 년에 두 번밖에 할 수 없는 목욕이지만 몸을 깨끗이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외상값은 해를 넘기지 않았고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548~1634)은 이조판서였던 45세에 임진왜란을, 75세에 인조반정을, 80세 때는 정묘호란을 겪는 풍운의 시대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선조임금 이후 3대에 걸쳐 영의정만 여섯 번 지냈고, 광해군과 인조 때에는 첫 영의정으로 발탁된 명재상이며 청백리였다.한때 그의 집이 너무 낡아 새로 지으려고 하는데 호조판서로 제
여자가 와인을 마시면 사형에 처해졌다. 와인의 색깔이나 농도가 피를 닮은 탓에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다른 남자와 피를 섞는다는 불륜의 죗값이었다. 이 거짓말 같은 사실은 고대 로마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기원전 6000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카프카스 지방에서 최초의 와인이 제조된 후 메소포타미아를 거쳐 이집트로, 다시 그리스와 로마로 전해졌다. 당시
첫날밤 신혼남녀가 같이 덮는 이불을 '원앙금침'이라 한다. 부부간에 금슬이 좋다고 소문난 원앙을 수놓은 이부자리와 베개다. '금침(衾枕)'을 비단을 뜻하는 '금(錦)'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원앙금침은 신부집에서 장만했다. 저녁 무렵에 신부집에서 혼례를 올리고 나면 거기서 첫날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 이불 안에 비단으로 싼
부부가 마트에 갔다. 남편은 술 생각이 나서 아내에게 맥주 한 박스만 사가자고 했다. 아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화장품을 샀다. 남편 왈 '술 취하면 다 예뻐 보이는데' 하고 말했다가 그날 부부싸움 났다나 뭐라나.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76년(고종13년) 개항이 되자 일본인 거주자가 늘어나면서 신식문물과 함께 '삿뽀르 맥주'가 최초
고전문학의 배경이 되는 설화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 그 정표로 생니를 뽑아준다는 '발치설화(拔齒說話)'가 있다.한양에 사는 한 젊은이가 경주에 갔다가 그곳 기생에게 반했다. 그러나 때가 되어 한양으로 돌아갈 때 그 기생은 사랑의 정표로 몸의 일부를 자기에게 남겨 달라고 조르자 젊은이는 이를 뽑아 주었다. 한양으로 돌아간 젊은이는 헤어진 뒤 자기만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밤이면 종로 사거리 보신각 주변에는 수십만 명의 인파가 제야의 종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모인다. TV에서도 때맞추어 현장을 중계한다.우리의 전래풍습에 섣달 그믐날 궁중에서 대포소리로 악귀를 쫓는 '연종포(年終砲)'라는 의식은 있었지만 정초에 보신각종을 쳤다는 기록은 없다. 조선시대 통행금지가 시작되는 밤 10시에 성문을 닫으면서
아귀가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어부들은 '에이, 재수 없어'하면서 배를 가르고 그 속에 든 작은 고기들만 끄집어내고 도로 물에 '텀벙' 던져버린다고 해서 갯가사람들은 '물텀벙'이라 불렀다.대가리는 엄청 커서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색깔도 시커먼 게 입은 못 먹어 걸신들린 듯이 쩍 벌리고 있다. 못 생긴 걸로 치면 이만한 고기도 드물다. 대가리가 크
요즘이야 김장하는 게 일 같지 않아 보인다. 마트에 가면 일년 내내 잘 익은 김치를 사 먹을 수 있으니까 많이 담을 필요가 없고, 설령 김치를 담근다 해도 절인 배추를 사와서 양념을 버무리기만 하면 된다. 전에는 가정사 일년 행사의 마지막 고비가 김장이었다. 김장이 끝나야 한해 일이 끝났다. 거제도에서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지 않고 선창가에 가서 바닷물로 씻
소설 연극 노래 드라마 등으로 감동을 줬던 '가시고기'는 부성애의 상징이다. 주로 중부지방의 개울이나 강에 사는 이 민물고기는 4∼7월의 산란기가 되면 암컷이 안전하게 산란할 수 있도록 수컷이 수초를 물어와 자기 몸에서 분비한 점액질과 섞어 둥지를 만들어 준다.암컷은 여기에 알을 낳고는 떠나버린다. 알이 부화되려면 많은 산소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
달을 보고 연상하는 스토리가 나라마다 다르다.우리는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생각했고, 중국 소수민족인 호지엔족은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던 며느리가 죽어 달에 살면서 물을 긷는 모습이라 했다. 유럽남부에서는 독서하는 소녀로, 중국에서는 불사약을 훔쳐 마시고 달에 숨어 사는 항아(姮娥)로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체로 달과 여자가 연관되는 구조가 많다.전통적으로 농
며칠 전 흑산도와 홍도에 갈 일이 생겼다. 무엇보다 마음 설레게 한 것은 홍도에는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인 깃대봉이 있고, 흑산도에는 콧구멍을 뻥 뚫리게 하는 오리지널 삭은 홍어를 맛 볼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그런데 흑산도에 그런 홍어는 없었다. 향이 살아 있는 생 홍어를 먹을 수 있는데 구태여 삭힐 필요가 없는 탓이다. 다만 옛날 어부들이 홍
개는 적어도 1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온 포유류 중 가장 오래된 가축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애완동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개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비싼 액세서리에 사람과 한 이불을 덮고 자기도 하고, 어떤 여자들은 스스로 '개엄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개를 개처럼 취급했다가는 큰일 나는 세상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고생, 개수작, 개망신,
유명하신 어느 시인께서 산사(山寺)에 계실 때였다. 산 아래 마을에 재산이 많은 부자 한 분이 늦둥이 아들을 얻자 이름을 지어 달라고 찾아왔다.돈 좀 있다고 거드름을 피우며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될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자 "그럼 다스릴 치(治)자에 나라 국(國)자를 쓰면 되겠군요" 했더니 매우 좋단다. 사실은 그 졸부의 성이 김씨라서 웃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