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성품 중에 하나가 오래 참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오래 참음’의 열매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을 말씀하면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말씀한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가 돼야 한다. 성경을 우리는 '영혼의 양식' 또는 '생명의 양식'이라 부른다. 사람이 양식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우리 몸은 양식을 먹어야 에너지를 얻어 활동을 할 수 있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영혼도 양식을 섭취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영혼에 힘을 공급하는 양식은 바로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다.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하고 주리신 후에 시험하는 자가 찾아와서 "네가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우리 주님은 두아디라교회를 칭찬하실 때에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고 하신 후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하셨다. 두아디라 교회의 그 행위가 아름답고 귀하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나중 행위가 처음 행위보다 많다는 것이다.바로 이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묘미요 아름다움이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작은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하였지만, 그러나 점점 창대해져 가고, 그래서 처음보다 나중이 더 아름다운 것, 처음보다 나중이 더 풍성하
1517년 10월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 안에 있는 교회당 앞에 대자보를 걸었다. 95개조로 된 항의문이었는데, 주요 내용은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 비성경적이라는 것이었다.1457년 교황 칼릴스투스는 연옥에서 고통 받는 자들의 영혼을 해방시키는 것도 면죄에 의해 할 수 있다고 선포했다.원죄로 말미암은 죄는 세례를 받을 때에 사라지지만, 자범죄는 면죄 받아야 하는데, 자신도 알지 못했던 죄나 고백하지 못한 죄는 여전히 남아 있어, 사람이 죽으면 연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면죄부를 사면 그 모든 죄가 청산되어 천국으로 간다
어떤 가정에 두 아들이 있었다.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고 있던 이 가정에 갑자기 근심거리가 생겼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했다. 죽기도 전에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유대사회 전통에서는 아버지 없이 사는 게 낫겠다고 하는 선언이다. 이는 살아있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다.그런데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말을 들어줬다. 살림을 큰 아들, 작은 아들에게 각각 나눠 줬다. 작은 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갔다. 거기서 허랑방탕해 재산을 다 허비하고 빈털터리가 됐다. 궁핍해 살 길이 막막한 그는 남의 집 머슴살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평강을 선포하시며 나타나셨다.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도 예수님은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신다."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얼마나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사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천국은 우리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성령의 활동을 두 가지 분야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성령님께서 정규적으로 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죄를 입증하시고 회심시키시고 거듭나게 하시고 일하게 하시고 성화의 과정을 밟게 하시는 일이다.또 하나의 활동은 성령님의 예외적인 사역이다. 성령님께서 평상적인 사역을 하시는 동시에 예외적인 사역도 하시는데 그 예외적인 사역은 교회사에 두드러진 흔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에 시대 시대마다 일어나는 부흥의 역사가 바로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다.성령님께서 오시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
이사야는 유다왕 웃시야와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시는 모습을 보았다(사 6:1).웃시야는 열여섯 살에 왕이 되어서 52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통치하다가 BC 740년에 죽었다. 웃시야는 통치 초기에 하나님을 찾았고, 그가 하나님을 찾을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대하 26:5). 하나님은 웃시야를 도우셨고,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다.당시 앗수르에는 강력한 왕인 디글랏빌레셀 3세가 등장하였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이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힘들게 한다. 옆에 누군가 다가오면 혹시 이 사람이 보균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든다. 자연히 모든 활동이 움츠려들게 되고 경제는 위축되고, 여기저기서 못살겠다고 힘들어한다.모세 당시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애굽인들은 이스라엘을 학대했다. 매일 강제노동을 하게 하였다. 아들을 낳으면 부모의 손으로 그 자식을 나일강에 던져 버리게 했다. 게다가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400년 동안이나 침묵하셨
성경은 요셉을 꿈꾸는 자로 소개한다. 하루는 요셉이 형제들과 밭에서 곡식단을 묶고 있는데,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이 둘러서서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또 한 번은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을 향하여 절을 하는 꿈을 꾸었다. 하나님께서 모든 형제들 위에 요셉을 높여 주신다는 꿈이었다.그런데 이 꿈으로 인해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어느 날 형들이 세겜에서 양 떼를 치고 있을 때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 보냈다. 배다른 동생 요셉이 오는 것을 멀리서 본 형들은 요셉을 죽일 계획을 세우며 서로 말한다."꿈꾸는
'욜로(YOLO)' 라는 말이 유행한다. You Only Live Once. 인생은 한번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며 살자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욜로'다.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자고 말한다. 한번뿐인 인생 맘껏 즐기며 살아야 억울하지 않다는 것이다.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도 같다. 성경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히9:27) 했다.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사람들마다 인생 성공비결에 대한 나름대로의 소신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이 배워야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대로 열심히 배우려고 한다. 집을 팔고 논밭을 팔아서라도 자식은 가르쳐야 된다고 여기고, 많이 배운 자가 힘 있고 잘 산다고 믿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이 성공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뛰어다녀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인간관계가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잘 사귀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한다.사람이 성공하려면
예수님은 8복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평화를 희망하는 사람이 아니다. 평화를 구하는 사람도 아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peacemaker,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복이 있다.'평화'(화평·평안)는 성경 전체에 퍼져 있는 개념이다. 성경은 에덴동산의 평화에서 시작해 영원한 평화로 끝을 맺는다. 인간의 죄가 에덴동산의 평화를 깼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셨다. "그는 우리의
우리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련이 있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시련은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다. 내가 문제가 싫다고 해서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는 아무도 시련과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학교를 졸업하면 중간고사·기말고사는 더이상 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인생의 시험은 면제될 수 없다. 우리 인생에는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이 항상 따라 다닌다.욥은 "사람은 고난을 위하여 났다"고 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는 너희가
예전에 상수도 시설이 없을 때는 우물물을 길어 먹기도 하고, 물동이 이고 가서 샘물을 떠다가 먹기도 했다. 우물물을 길어 올리는 도구 중에 하나가 물 펌프다.그런데 이 펌프를 몇 시간 사용하지 않다가 쓰려고 하면 아무리 펌프질을 해도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펌프 안에 들어간 공기 때문에 깊은 우물 속의 물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때 펌프의 입구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펌프질을 하면 그 물이 내려가면서 중간에 있는 공기를 빨아올리고 물도 함께 올리게 된다.이렇게 우물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부어주는 한바가지 물을 마중물이라 한다.
로마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 2:22)고 했다. '연단'이라는 말은 시험이나 훈련을 통해 증명된 가치를 뜻하는 단어이다. 디모데는 증명된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였다. 그는 자기 일을 구하기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먼저 구하는 자였다.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보다는 자기 일을 먼저 구하였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사건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 죄를 위한 대속적인 죽음이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이 그냥 죽음으로 끝나버렸다면 십자가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십자가가 중요하게 되었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것이다.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은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고 하는
'복음본색'이라는 책을 낸 미국 써밋교회의 그리어 목사님은 고등학교 때 처음 예수님을 믿고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 결심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긴 목록을 만들었다고 한다.그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춤도 추지 않았고 영화도 보지 않았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하는 비트 음악도 듣지 않았다. 대학시절에는 선교여행도 많이 다녔고, 선교헌금도 많이 했다. 참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커피마시고 콜라 마시는 것까지 아껴서 인도에 있는 고아들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 11:8).성경은 아브라함을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고 소개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신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나?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믿음이었다.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 마음으로 '아멘' 할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믿음이다. 말이나 생각만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믿
어떤 사람은 항상 뒷북만 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남이 이렇게 해서 돈 좀 벌었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해 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또 어떤 사람이 이것이 좀 돈이 된다고 하면 나도 그렇게 한다. 그러나 또 때가 지나버렸다. 그래서 이렇게 해보면 좋을까 저렇게 해 보면 좋을까, 남들 좋다는 것 다 해보지만 항상 뒷북만 치고 마는 사람이 있다.반면에 어떤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복이 굴러 들어오는 사람이 있다. 하는 일마다 잘 된다. 복이 따라 다니는 사람이 있다. 우리 성도들은 복을 좇아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복이 따라 오는